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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차선과 차악 사이

[강남시선] 차선과 차악 사이

며칠 전 한 정치평론가 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요지는 내년 대통령선거의 선택 기준을 차선(次善)으로 보는지, 아니면 차악(次惡)으로 보는지를 묻는 거였다.

'차선'은 가장 좋은 것 다음으로 좋은 걸 말한다. 반면 '차악'은 가장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그다음으로 안 좋은 걸 일컫는다. 보는 주체가 눈높이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좋음'을 기준으로 삼을 땐 2순위 선택지가 차선이 되고, '나쁨'에 방점을 찍으면 차악이 된다.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최선→차선→차악→최악쯤 된다.

이번 대선국면의 특징 중 하나는 어느 때보다 '비호감도'가 높다는 점이다. 원내 제1, 2당 후보 본인에 대한 메가톤급 의혹 제기는 물론 가족 리스크까지 얽히고설키면서 혼란스러운 유권자들은 덜 나쁜 후보를 가려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응답자의 약 57%에 달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선 '지지할 후보가 없다'고 답한 20·30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그렇다고 유권자 탓만 할 수는 없다. 여야가 국정운영의 안정적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기보다는, 서로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는 네거티브 전쟁이 정치 혐오와 불신을 키운 탓이 크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내홍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윤석열 후보,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이준석 대표, 선대위 핵심 중진그룹 의원이 '원팀'이 되지 못하고 서로 네 탓 공방만 일삼다 급기야 선대위가 해체되는 파국을 맞았다. 지지율 하락에 다급해진 윤 후보가 극약처방전을 꺼내든 것이다. 윤 후보는 자신이 극진히 모셔온 김종인 위원장과도 결별하는 초강수를 뒀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2년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19대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였던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엔 문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원내 1당 등극'이라는 잭팟까지 터뜨렸다. 이래서 붙은 김 전 위원장의 별명이 '정당 소생술사' '킹메이커'다.

필자는 평소 주변에 '좋아하는 후보가 없더라도 투표는 꼭 하라'고 권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기권해버리면 나쁜 정치가 일상에 똬리를 틀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투표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내는 보험료와 같다. 보험료를 내지 않고 보험 혜택을 기대할 순 없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도 차선,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최악의 후보가 뽑히는 걸 막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선거는 과거보단 한 나라의 미래와 비전을 선택하는 장(場)이 돼야 한다. 유권자들이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