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빚투 구하기’가 불편한 이유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4 18:51

수정 2022.08.14 18:51

[강남시선] ‘빚투 구하기’가 불편한 이유
"내 집 마련한다고 낸 빚은 탕감 안 해주나?" "원금을 깎아 달라는 게 아니다. 이자만 싸게 해주면 좋겠다." "나라에서 빚을 갚아준다고? 빚 없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온 사람은 무슨 죄냐."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빚 얘기로 시작해서 빚 얘기로 끝났다. 모두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이만큼 어려운지 미처 몰랐단다.

"아이들 학원비 등으로 가뜩이나 빠듯한 형편인데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가 한 달에 30만~40만원 더 들어가게 생겼다." 자칭 '생계형 채무자'인 친구는 연달아 쓴 소주를 들이붓는다.
그러면서 "빚 내서 코인이다, 주식이다 투자한 젊은 친구들만 소중하냐. 공정은커녕 역차별도 이런 역차별이 없다. 우리 집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는 4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빚투로 손실을 입은 청년층의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나선 데 대한 역풍이 만만치 않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란 지적이다. 나쁜 선례를 만들 수도 있다. '버티면 나라에서 빚을 해결해 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오랜 저금리 기조 속에 '대박'을 꿈꾸며 저축 대신 빚을 내면서까지 가상자산,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정부가,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30 취약계층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마련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부담이 더 커진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과도한 채무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탓에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은 빚 탕감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투기꾼 구하기'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서다. "어떤 경우에도 원금탕감은 없다"는 정부의 해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해 가상자산의 수익률은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가 넘었다. 같은 해 4월 모 기업 직원이 가상자산으로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영끌족'이 집중됐던 부동산 역시 높은 수익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전국의 주탁 매매가격 인상률은 15%에 이른다. 같은 기간 근로자들의 임금인상률은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끼고 아끼면서 월급을 모은 이들은 '벼락거지' 취급을 받았다.

증권담당 부서장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전화가 "당신들 기사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독자들의 항의다. 기사는 참고사항일 뿐, 모든 투자결정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일단 화풀이 대상을 찾고 보는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얘기는 같다. "사장님(또는 사모님), 만약 기사를 보고 큰 수익을 냈다면 돈 벌게 해줘서 고맙다고 전화 주셨을까요?"

모든 투자는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
바로 '자기 책임'이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