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300억 이상 횡령·배임에 징역 5~8년 권고…"양형기준 높여야"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4 05:00

수정 2023.01.04 05:00


우리은행에서 6년 동안 614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가 지난해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우리은행에서 6년 동안 614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가 지난해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최근 수년간 회삿돈을 몰래 빼돌리는 등 횡령·배임 규모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대까지 늘었지만 정작 양형기준은 10여년째 '300억원 이상'에 고정돼 있어 전문화되는 범죄 수법과 커지는 횡령 규모에 따라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횡령이나 배임의 경우 투자자 손실 초래는 물론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현실에 맞게 양형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수천억원 회삿돈 빼돌리는 거액 횡령사건 줄이어

최근 2년새 잇달아 벌어진 거액의 회삿돈 횡령 사건의 규모는 오스템임플란트(2215억원), 계양전기(245억원), 서울 강동구청(115억원) 등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한 개인이 수천억원대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투자를 하거나 개인 용도로 쓴 게 뒤늦게 밝혀지면서 회사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 사건으로, 회사 가치와 신용도를 떨어뜨려 주식 값마저 폭락하는 엄청난 손해를 끼치게 한다.
자칫 회사 신용도 저하로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하거나 최악의 경우 회사가 문을 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듯 한 개인의 일탈이 회사와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실로 막대한 편인 데도 정작 양형기준은 10여년 전 그대로다. 금융범죄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날로 교묘해지는 횡령 수법 등을 감안해 양형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비리 의혹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대장동 일당들의 공소장에 기재된 배임액은 최소 651억원에 달한다.

민관을 불문한 대규모 재산범죄에 검찰의 구형량도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김동현 부장판사) 심리로 지난해 12월 열린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147억원의 추징금과 함께 전 직원 이모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법원 선고형량도 덩달아 무거워지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펴낸 사법연감에 따르면 횡령·배임죄에 징역·금고·구류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된 비중은 10년 전인 2012년부터 내내 52~56%대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47.5%로 내려앉았다. 수백억대 횡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최근 1심 판결을 받은 우리은행·계양전기 전 직원, 서울 강동구청 공무원 등도 모두 징역 10~13년을 중형을 선고받았다.

양형기준 14년째 그대로…"달라진 현실 반영해야"

하지만 양형 판단 때 참고 기준이 되는 양형기준은 이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09년 처음 만든 횡령·배임죄의 형량 범위는 '300억원'이 최대다. 횡령·배임죄 양형기준은 지난해 3월 '상당한 피해회복이 있는 경우'를 감경 인자로 반영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14년째 그대로다.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형기준은 과거 판결 기록을 통계적으로 분석·검토해 만들어지다 보니 만들 때부터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며 "양형기준이 만들어진 후 시간이 많이 흘러 커진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해 형량 범위를 보다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9기가 구성되는 올해 4월 양형기준 설정·수정 대상 범죄군을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횡령·배임범죄군 수정 여부도 이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혀 양형 기준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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