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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전직 대통령의 훈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5 18:19

수정 2023.09.25 18:19

[fn광장] 전직 대통령의 훈수
며칠 전 다른 부처의 OB(올드보이의 약자)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근황을 물었더니 후배들이 선배들을 짐짝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아예 차단하고 산다고 했다. "뜬금없이 전화해서 부탁하는 선배들이 부담스럽겠지요. 후배들 마음도 이해가 가요. 근처도 안 가고 있어요."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전직 회장이 현 회장이 주최하는 행사에 갑자기 나타나 소리를 지르고 이런 행사를 하지 말라고 방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전직 회장은 직원들에게 쫓겨났다. 믿어지지 않는다.
이성과 지성을 갖춘 그가 어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상상도 안 간다.

하지만 사건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있다니 사실이긴 한가 보다. 전·현직이 다투는 모습은 그동안 많이 보고 들어서 놀랍지도 않지만, 훈수를 두다 못해 행동으로 저지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호적 관계도 많다. 전·현직이 지내는 모습은 이렇게 다양하다. 차단하는 냉소적 관계, 갈등과 싸움으로 불편한 관계, 너무 밀착되어 카르텔이 형성된 관계 등등. 이권 카르텔도 문제이지만 갈등 관계도 바람직하지 않다. 후배들의 존중을 받으며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차단하라고 권하고 싶다. 대통령들도 전·현직 관계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언론 보도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9월 5일 오전 현재까지 484일간 SNS 게시글이 페이스북 114건, X(옛 트위터) 103건, 인스타그램 52건으로 모두 269건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글을 올린 셈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현직들도 어떤 식이든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만 좀 하시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최악의 사건, 직원들이 자기가 모시던 상사를 행사장에서 쫓아내는 모습이 또 발생할 수도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갈등은 증폭이 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즐기고 좋아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전직 대통령의 훈수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가 걱정되어서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맞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본인의 경험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사해하며 '한 수 가르침'을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순수하다 못해 너무 순진한 것이고, 듣거나 말거나 일부 강성 지지층을 위한 발언이라면 사회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그렇다. "이 문제가 민주당 정권에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무엇이라고 설명할까"라고 누가 물었다. "다들 지금 상황과 비슷할 거예요"라는 자조적인 답변이 대부분이다. 정권과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다 틀린 것도 아니고 현직 대통령이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이념이나 국제 문제가 개입된 일은 더 그렇다. 굳이 전직 대통령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저성장과 고물가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념이나 정파 싸움에 몰두하기보다는 민생과 국익에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 민심은 선거에서 표출될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한 지난 5년 동안은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실망이 컸다. 국민은 선거로 민심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 정부가 하는 일들이 옳은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국민이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다. 듣지도 않는 훈수를 빈번히 하는 것은 발언의 진정성과 본인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훈수를 두고 싶다.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효과도 없는 훈수보다는 우호적이고 존경하는 관계를 국민은 원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실까. 차라리 차단하시라.

이복실 국가경영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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