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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양대 노총 회계공시 수용, 원칙 지킨 개혁 첫 성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4 18:24

수정 2023.10.24 18:24

한국노총 이어 민주노총도 동참해
고용세습 등 산적한 과제도 해결을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2월 2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찾아 김문수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2월 2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찾아 김문수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노총은 지난 23일 "개정 노동조합법 및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라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등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회계 공시 의무화를 노조 탄압이라며 반발했던 한국노총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정부가 노조 회계 공개를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끝에 달성한 성과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수천명의 전임자를 두고 수천억원대의 예산을 집행하는 거대 조직이다.
거액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쓰면서도 외부 회계감사를 받지 않고 공개도 하지 않는 '깜깜이 회계'로 지탄을 받아왔다.

깜깜이 회계가 노조 부패의 온상이 돼 온 것도 사실이다. 노조 간부들이 조합비를 빼돌려 유흥비와 해외여행 경비로 쓰다 적발돼 실형을 선고받는 등의 사례가 적지 않았다. 노조원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았다. 지난해 말 포스코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조합비만 챙겨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노조는 정부에 회계를 매년 보고해야 하며 정보 접근권도 보장된다. 주요 국가 중에서 노조가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썼는지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찾기가 어렵다. 더욱이 양대 노총에는 매년 노조 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국민 세금에서 나온 국고보조금 수십억원을 보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배경에서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공시 의무화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탄압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구린 구석이 없다면 회계자료를 공개하면 그뿐일 텐데 양대 노총은 막무가내로 거부해 왔다. 정부는 보조금 지원을 이유로 한국노총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거부하자 지난 5월 보조금 지원을 끊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노총의 입장 선회에는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노조엔 15%의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압박이 작용했다. 1000명 미만의 노조는 공시 의무가 없지만,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이 공시를 거부하면 산하 전체 노조원들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는 불이익이 따른다. 1년 조합비가 36만원이라면 조합원이 5만4000원을 돌려받던 혜택이 없어지는 것이다. 회계 공시를 의무화한 관련 법령은 이달 1일 발효됐다.

양대 노총이 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예산의 상당한 부분이 반정부 정치투쟁에 쓰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 상황에서 자세한 집행내역을 공개하기가 꺼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 본연의 취지와 목적에 어긋나는 정치개입과 반정부 시위도 차제에 자제하겠다는 선언을 하기 바란다. 또한 민주노총이 24일 한국노총을 뒤따라 공시에 동참한 것은 마땅한 결정이다.

회계 공시 법제화는 정부로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고, 노조의 악습을 개혁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이번 공시 의무화는 원칙적 대응의 중요성도 보여줬다. 개혁에는 반발과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명분이 충분한 개혁이라면 설득과 유도라는 온건한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공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회계 공시는 노동개혁의 첫발일 뿐이다. 고용세습과 불법파업, 조합원 탈퇴 금지 등 개혁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노조의 반발과 저항에 굴복하지 말고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개혁을 끝까지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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