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뒤져서 안나오면 어쩔래?"..일단은 물러섰지만 반격 기회 남았다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6 05:00

수정 2023.10.26 10:33

'근로시간 개편·이중구조 개선' 향방 주목
노동계 강력 반발은 변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2.5.24 ⓒ News1 조태형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과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22.5.24 ⓒ News1 조태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양대노총이 회계공시 제도 동참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다른 노동개혁 과제들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인 노동개혁은 올해 초 '주 최대 69시간' 논란으로 역풍을 맞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이후로 사실상 좌초해왔다. 다만 이번 양대노총의 회계공시 결정은 정부의 정책을 따른 것이 아닌 '조합원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 때문에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앞으로 노조가 회계공시를 진행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다면 '정부의 노조 옥죄기'가 선을 넘었다는 반발만 더해 개혁 추진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대 노총, 울며 겨자먹기로 회계공시 수용했지만...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부터 노동개혁 중 중점 과제로 추진해왔다. 노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회계 결산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 공개하고 있지만 정부가 노조 재정을 관리·감독할 규정은 없어 '깜깜이 회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노조 부패 방지와 투명성 강화가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노동자 복리 증진에 필수적"이라며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 구축을 지시한 바 있다.

정부는 바로 윤 대통령의 지시 이행에 착수했다. 지난 2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와 연합단체에 회계 장부 점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양대 노총이 자료 제출과 현장 조사를 거부하면서 노정 갈등이 악화됐다.

노동조합법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거쳐 회계공시 시스템 도입이 결정되면서 노동계의 반발은 더 커졌다.

정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또는 산하 조직은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를 공표하도록 하고, 공시한 노조의 조합원만 조합비 15%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하는 개정 시행령을 당초 예고보다 3개월 앞당긴 이달 초부터 시행하는 등 노조를 몰아쳤다.

그동안 회계공시가 '노동 탄압'이자 '노조 운영 개입'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온 양대 노총이 어쩔 수 없이 동참을 결정한 이유는 세액공제 불이익 때문이다. 상급단체가 공시하지 않으면 회계를 공시한 산하 노조의 조합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어 양대 노총으로서는 다수 조합원의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긴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양대노총은 노조 통제를 위한 시행령 규탄 투쟁은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노정 갈등 불씨가 언제라도 커질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에 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민주노총은 "부당한 노조법 및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며 "세액공제와 무관한 운영자료 등 노조 활동에 대한 개입과 간섭에 대해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도 상급 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산하 조직도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되는 방식을 사실상 '연좌제'로 규정하고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돌입했다.

'근로시간 개편·이중구조 개선'도 난항 예상

정부는 이번 회계공시 제도를 발판삼아 나머지 부문의 개혁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특히 노동개혁 시행 초반 발목을 잡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 추진 방향에 눈길이 쏠린다.

정부는 지난 3월 주 52시간 근무제를 월이나 분기 등 단위로 유연화하는 개편안을 제시했지만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것에 반발이 커졌다. 결국 윤 대통령은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고용부는 지난 6∼9월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제도 운영 실태,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 대한 인식, 향후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 등을 묻는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을 진행했다.

정부는 다음달 설문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근무시간 개편 보완 방향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중구조 개선을 포함한 노동시장 불공정 격차 해소에도 속도를 낸다. 지난 2월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는 다음달 권고문 발표를 앞두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 등에 따라 근로조건과 임금 격차가 큰 구조를 의미한다.

7개 부처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생임금위원회는 이중구조 개선과 더불어 연공(여러 해 일한 공로)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도 논의해왔다. 정부는 위원회의 권고문을 반영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에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양대 노총은 조합원 불이익을 우려해 회계공시를 수용했어도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에 대해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노동계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노동개혁은 또 동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양대노총은 다음달 대규모 노동자 집회에서 노조 회계 공시를 비롯한 정부의 노동개혁을 강력 규탄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 20만명, 한국노총 10만명 등 총 30만명이 집결할 예정이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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