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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파스의 명가 '신신파스'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16 18:19

수정 2023.11.16 18:58

[기업과 옛 신문광고]파스의 명가 '신신파스'
근육통이나 관절통 부위에 붙이는 파스는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가정상비약으로 두고 쓸 정도로 익숙한 제품이다. 약물은 피부를 통해 더 빨리 흡수되기에 파스를 붙이면 몸이 후끈해지면서 약효가 금세 나타난다. 파스의 어원은 영어의 'paste(반죽·붙이다)'와 같다. 먹는 파스타와도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pas가 아니라 pain patch라고 한다. 파스의 역사는 매우 길어 고대부터 사용됐다고 한다.
통증이나 상처, 염증이 있는 피부에 약물을 바른 직물을 붙였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나온 유한양행의 '안티푸라민'은 처음에는 파스와 같은 습포제였다가 연고로 바뀐 것이다.

광복 후 국산 파스는 신신파스가 발매될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 때부터 팔렸던 일본 히사미쓰제약의 '샤론파스'(Sharon Pas)가 밀수입돼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샤론파스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파스다. 처음 나온 신신파스 광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염증을 낫게 하고 아픈 곳을 없애는 그 작용이 탁월하여 일제 사롬파스보다 손색 없음을 말씀드립니다"(동아일보 1961년 8월 4일자·사진). '사롬파스'는 '샤론파스'를 잘못 쓴 것이다. 신신파스의 등장으로 밀수품 샤론파스는 자취를 감추었다.

국민 대다수가 육체노동에 종사할 당시 근육통을 쉽게 낫게 할 수 있는 약품이 절실했다. 이런 현실을 잘 알던 고 이영수 회장은 1959년 9월 신신제약을 세우고 작고 허름한 공장에서 파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광고를 보면 당시 회사 이름은 '신신반창고'로 돼 있다. 1927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중국에서 수학한 뒤 화학·제약 업체에 다녔다고 한다. 2020년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60년 동안이나 회사를 이끌면서 신신제약을 파스의 명가로 키워냈다.

신신파스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파스 제조에 쓰이는 면사가 부족해 직원들이 와이셔츠까지 벗어 제품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70년대는 신신파스의 전성기였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많아 '박카스'나 '원기소'와 더불어 현금 거래만 하는 이른바 '현금 박치기' 제품 반열에 올랐다. 당시 '신신파스A'의 매출 순위는 서울약품의 원기소를 앞섰다. 1983년 신신파스는 완제 의약품으로는 처음으로 '1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을 정도로 수출에도 기여했다.

다른 제약회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르거나 뿌리는 제품과 관절염에 특화한 제품으로 공세를 폈다. 파스 시장은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신신제약도 '에어신신파스' '물신신파스' 등 다양한 제품들로 맞서며 아성을 지켜냈다. 사실 에어파스는 신신제약이 1967년에 선구적으로 내놓았던 제품이다.
현재 신신제약은 파스 전문 제약회사를 고수하면서 한방 감기약 등 새로운 영역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올해 매출 1000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한다.
문어발식 확장을 삼가고 파스 제조에 집중함으로써 강소기업의 면모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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