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재테크

연준의 심심찮은'돌발 발언'… 시장 흔들고 정책효과 반감 [한미재무학회, 석학의 제언]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4 18:11

수정 2023.12.24 18:11

연준의 소통 실수와 자본시장의 오버슈팅
김성재 美 퍼먼대 경영학 교수
'비밀의 사원'으로 불렸던 과거 연준, 2011년 버냉키 전 의장 이후로 변화
FOMC 회의 이후 첫 기자회견 열어
금리 결정 결과와 정책 방향 등 공유
현 의장인 제롬 파월 적극 소통 불구... 성명서와 다른 발언으로 시장 혼동
390조 이상의 가치 변동 발생하기도
전문 경제학자가 아닌데서 오는 문제
연준의 돌발 발언·과한 힌트 남발시 달성코자 하는 정책목표기간 멀어져
김성재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 응용경제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분야다.
김성재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 응용경제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분야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중앙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지방의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이 합쳐져 이루어진 시스템이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 한다. 여타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반면 연준은 두 가지 목표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는 쌍두마차 정책명령(dual mandates)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는다.

■통화정책 목표 위해 금리와 통화량 사용

연준은 통화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리와 통화량을 사용한다. 이전에는 통화량을 주된 수단으로 사용했으나 1980년대 초 이후부터 금리를 통해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에 시달렸다.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 앞에는 스태그플레이션 극복이라는 시대적 난제가 부여됐다.

이에 볼커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감수하고라도 우선 물가를 잡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경제 내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줄였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금리가 20% 위로 치솟았다. 많은 기업과 자영업자가 파산했다.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 경기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결국 연준은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는 통화량 조절을 폐기하고 금리 목표치를 정해 이를 올리고 내리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연준이 정확히 언제부터 통화량 목표제도를 포기하고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Fed funds rate) 목표제도로 전환했는지는 명확지 않다. 1980년대까지도 연준은 '비밀의 사원'으로 불릴 정도로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래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통화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연준 의장을 포함한 7명의 이사와 뉴욕 연은 총재 그리고 4명의 지역 연은 총재가 FOMC 회원이 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미국 워싱턴DC에서 회의를 갖고 금리 변경을 비롯한 통화정책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연준은 FOMC 회의 결과를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후 2시 성명문(statement)으로 발표한다. 그 직후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FOMC 결정을 설명하고 언론의 질의에 답변한다.

■FOMC 회의 후 연준 의장 멘트에 초긴장

FOMC 회의 결과가 발표되는 오후 2시를 전후해 금융시장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자산시장에 큰 여파를 던진다. 발언의 맥락에 따라 자본시장의 가격은 큰 폭으로 등락한다. 금리가 인상되면 시중 유동성이 악화하고, 이에 따라 자산시장 수급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금리인하는 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

연준의 금리결정 결과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었다. 버냉키와 케네스 커트너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2003년 논문에서 연준이 예상을 뛰어넘어 25bp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주가지수가 1% 상승하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2005년 브라이언 색 연준 이코노미스트와 에릭 스완슨 연준 이코노미스트 등은 한 논문에서 연준의 통화정책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금리결정 효과로만 설명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금리 자체의 예기치 않은 변경보다 성명서가 시사하는 미래 금리정책 방향이 자본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연준이 투명하게 정책결정을 공개하고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미래 정책방향에 대한 힌트를 줌으로써 정책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증진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색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연준이 정책전망에 대한 지침(forward guidance)을 미리 준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연준은 그간 정책결정의 투명성을 제고해 왔다. 결정 과정에 대한 공개의 폭도 넓혀 왔다. 앨런 그린스펀이 의장으로 재직하던 1994년부터 연준은 FOMC의 금리결정 결과를 성명서 형식으로 발표하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성명서에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를 추가했다. 2003년부터는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지침이 포함되었다.

■버냉키부터 시장과 소통 강화

그러나 이때까지도 연준은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관료적 조직으로 비쳤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민주적 책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려 시도한 이가 버냉키 전 의장이다. 연준 의장으로는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1년 4월 FOMC 회의 직후 버냉키 의장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은 이를 기념비적 사건으로 봤다.

버냉키를 이어 연준 의장이 된 재닛 옐런과 제롬 파월도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과의 대화를 지속했다. 현 연준 의장인 파월은 특히 친절하고 자상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갔다. 수시로 의회 청문회에 나가고 각종 간담회에 출연, 입장을 피력했다.

언론의 포커스는 파월 의장에게만 맞추어지지 않았다. 경쟁이라도 벌이듯 연준의 고위 인사들이 각종 행사와 인터뷰에 나와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12개 지역 연은 총재들은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발언 수위를 높이곤 했다. 연은 총재 중 FOMC 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5명에 불과하지만 모든 총재가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정책 결과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은 종종 문제가 됐다. 정통 경제학자가 아니다 보니 발언에 실린 철학의 깊이가 얕다. 때로는 기라성 같은 주요 언론사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말려들기도 한다. 이로부터 기자회견장의 분위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시장은 이를 곡해하기 일쑤다.

하버드대학의 남라타 너레인과 쿠날 상가니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 나설 때마다 시장 변동성이 크게 증가함을 발견했다. 이들은 파월의 FOMC 회견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아래위로 1% 이상씩 움직였다고 보고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파월의 회견으로 390조원 이상의 시장가치 변동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성명서보다 연준 의장 발언에 더 주목

흥미롭게도 과거 버냉키와 옐런 전 의장 때는 FOMC 기자회견에서 연준 의장의 발언에 시장이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시장이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성명서 내용과 연준 의장의 발언의 맥락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냉키와 옐런 전 의장은 압축적 언어를 사용해 성명서가 시사하는 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발언을 선보였다. 반면 파월 의장은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려다 보니 의도치 않게 매파적이거나 비둘기적 발언을 하게 된다.

이런 돌발적 발언이 나올 때마다 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자산가격 변동성을 키운다. 시장의 이런 반응은 연준의 정책효과를 크게 떨어뜨린다. FOMC 회의의 결과와 정책 방향이 제시하는 바에 충실하게 시장이 반응할수록 연준의 정책의도가 제대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보다 높아 FOMC 회의에서 금리인상이 결정되었다고 가정하자.

성명문에는 물가에 대한 우려와 향후 긴축을 지속할 방침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 연준 의장이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언젠가 금리인상을 중단해야 하는 시기는 올 것'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만약 시장이 FOMC 성명서에 담긴 의도를 무시한 채 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를 긴축정책 종료를 시사한다고 곡해해서 상승 랠리를 펼치면서 오버슈팅하면 어떨까? 물가를 잡으려는 연준의 정책목표 달성 시점이 연장될 수밖에 없게 된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힌트도 문제

연준의 정책효과를 반감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시장 참여자의 심리에 대한 지나친 존중이다. 최근 연준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하여 과도할 정도로 풍부한 힌트를 시장에 던져준다. 파월 의장뿐만 아니라 지역 연은 총재들이 인터뷰와 간담회에서 매우 분명한 어조로 다음 FOMC 결정에 대한 전망을 남발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연준의 정책결정 결과는 이미 시장가격에 반영되어 버린다.

매번 시장의 예상대로 금리결정이 이루어지자 FOMC 회의 결과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크게 줄고 있다. 이는 FOMC에서 결정된 금리와 사전에 예상된 금리의 차이를 의미하는 정책의 경이도(policy surprise)가 거의 사라졌다는 의미다.

과거 카리스마가 매우 강했던 그린스펀 전 의장은 자주 시장 예측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시장에 충격을 가해 정책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선제적 물가 잡기에 성공했다.

현재 자본시장은 2024년 상반기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최근 주가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면서 저물가와 성장이 함께하는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가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린스펀이 연준을 이끌던 1990년대의 성공적인 물가 잡기와 장기간 경제성장의 재현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그러나 파월은 그린스펀이 아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연준의 정책은 뒷북치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로 인해 향후 수년이 선제적 조치로 인플레이션과 경기하강을 막았던 그린스펀의 1990년대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연준이 갈팡질팡 행보를 지속할 경우 시간이 갈수록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또한 연준이 성급하게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커진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정리=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