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큰 정부, 작은 정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5 19:11

수정 2024.02.05 19:11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3.2%, 여기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더한 국민부담률로 계산하면 32.0%다.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국민부담률이 34%이니 이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저부담 국가, 즉 작은 정부는 아닌 셈이다. 정부의 크기를 재는 바로미터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금부담의 비율, 여기에 사회보험료를 더한 국민부담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정부의 씀씀이, 즉 정부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정부의 역할을 비교하려면 국제기구, 즉 국제통화기금(IMF)이 정부재정통계(Government Finance Statistics)를 산출하기 위해 고안한 일반정부라는 개념을 활용하게 된다. 나라마다 정부 역할을 하는 기관의 범위가 다르니 기관이 하는 일에 공통된 기준을 설정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정부의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준정부기관을 모두 포괄해 정부의 크기로 비교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일반정부 기준 씀씀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37.8%로, 상대적으로 작은 정부로 알려진 미국(44.9%)이나 일본(44.3%)보다도 상당히 작은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OECD 평균은 50% 수준이다.

문제는 현재보다 늘어나는 속도, 즉 기울기다. 1995년 20.8%이던 것이 두배가 되는 데 채 30년이 걸리지 않았다. 미래 전망을 보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유례없는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로 연금 및 건강보험 지출이 계속 증가하고, 기후변화로 탄소중립과 자연재해 대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북한 변수와 지정학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국방 및 경제안보 관련 지출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2075년 우리나라는 고령화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정부의 영향력으로 치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정부 범위에는 빠져 있는 공기업들 역시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고는 하지만 독점인 경우가 많고, 지배구조는 물론 요금결정에도 정부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중앙정부 공기업만 해도 32개로 한전, 가스공사, 토지주택공사 등이 공익사업을 담당하고 철도공사, 도로공사 등이 사회간접자본 서비스를 그리고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정책금융을 담당한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다.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한 SH공사, 서울교통공사 등 공기업이 411개에 달한다. 공기업까지가 다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각종 산업에 걸쳐 두루 존재하는 협회와 주인 없는 대기업들, KT와 포스코, 농협 등 시중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정부의 크기는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의 상대적 관계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시장과 시민사회의 영역이 축소되게 마련이므로 큰 정부로 나아간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예산 규모와 정부의 영향력을 이야기했다. 거시적으로 보면 아담 스미스 이래 작은 정부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오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큰 정부가 등장했고 정부 실패가 강조되면서 다시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효율성, 혁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지금은 금융위기 이후, 나아가서는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역사의 거대한 시계추는 큰 정부로 이동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나라에 따라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고,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재정여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큰 정부, 작은 정부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스마트하고 유연한 정부가 강조되어야 한다.
묵시적 영향력과 간접적 재정부담 떠넘기기를 탈피하고, 칸막이를 넘어서는 준칙에 기반한 재정운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