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휴대폰 보조금 대란’이 공정한 경쟁이었을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2.24 18:07

수정 2025.02.24 19:36

이구순 이벤트사업실장
이구순 이벤트사업실장
"지난 주말 번호이동 숫자 빨리 집계해 보내주세요." 월요일 아침 다른 기자들보다 30분 먼저 출근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에 전화를 돌려둔다. 번호이동을 통해 이동통신 회사를 바꾼 가입자 수를 크로스체크하면 지난 주말 어떤 이동통신 회사가 보조금을 '질렀는지'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알던 대리점 서너곳을 통해 주말에 소위 공짜폰을 팔았던 '성지' 판매점을 파악하면 주말 사이 발생한 보조금 대란의 그림이 잡힌다. '주말 보조금 대란…OO폰 공짜로 팔려' 제목을 달아 기사를 출고하는 게 거의 매주 월요일의 일상이었다.

10여년 전 이동통신사 출입기자 시절 얘기다.

한국 국민이 5000만명으로 집계되던 2013년 초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5502만여명이었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전체 국민 수보다 많았으니, 이동통신 회사들은 더 이상 마케팅 대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동통신 3사는 매년 3조~4조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쟁회사의 가입자 뺏기 비용이다. A사는 B사의 가입자를 뺏기 위해 100만원짜리 첨단폰을 10만원에 팔았다. A사에 가입자를 뺏긴 B사는 C사의 가입자들에게 똑같은 최신 휴대폰을 8만원에 판다. C사는 다시 A사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최신 휴대폰이 공짜라며 이동통신사 교체를 유혹했다. 결국 시장은 커지지 않는데, 보조금·장려금 비용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이동통신 회사들은 요금인하는커녕 4세대(4G) 이동통신망 구축비용도 줄일 판이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2013년 초 불법 보조금 지급에 대한 제재로 이동통신 3사에 일제히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에 2015년부터 2022년 사이 담합 혐의를 적용해 거액의 과징금 제재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동통신 3사가 내부정보를 공유하면서 장려금 상한선을 임의로 정하고, 번호이동 규모를 조정했다는 게 공정위가 잡아낸 담합 혐의다.

그런데 공정위가 이동통신 시장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재를 준비하는지 재고해 줬으면 한다. 2015년이면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막 발효된 시점이다. 단통법은 단말기 유통구조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유도해 비싼 단말기를 싼값에 팔면서 한달 10만원이 넘는 비싼 요금제를 강제해 통신비를 높이고, 일부 소비자에게만 100만원 이상 지급되던 보조금과 장려금을 모든 이동통신 가입자가 투명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법이다. 방통위는 단통법이 제대로 시장에서 작동하는지 살피기 위해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숫자를 매일 파악했다. 번호이동 숫자가 시장의 과열을 파악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였기 때문이다. 당시 방통위는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전 국민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단통법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이런 노력 덕에 지난 10년간은 '보조금 대란' '휴대폰 성지 오픈런' 같은 기사는 보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방통위 지휘와 단통법에 따라 시장 안정을 꾀했던 활동이 공정위로부터 담합이라고 혐의를 받는 셈이니, 시장은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싶다.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혜택을 제공하는지 감시하는 것은 공정위의 당연한 임무다. 그런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통신산업에 특수규제기관을 둔 이유는 공정거래법만으로는 효율적으로 통신산업을 규제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역부족인 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신산업에는 특수규제기관의 의도를 반영해 주는 게 우선이다. 공정위가 이동통신 3사에 들이댄 이번의 담합 잣대가 특수규제기관의 입장을 무시한 채 다분히 경직된 원칙을 고집부리는 것 아닌가 신중히 재고했으면 한다.
공정위의 경직된 잣대로 더 이상 방통위 지휘가 안 먹혀 다시 '불법 보조금 대란, 소비자만 호갱' 기사를 준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이벤트사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