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경찰 부르기 전에 연락주세요"… 초등생 수배 전단, 공익성 인정해 무죄

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11 06:30

수정 2025.07.11 10:51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연합뉴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무인점포에서 결제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간 초등학생의 사진을 공개하며 연락을 요청하는 안내문을 붙인 점주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김민정 판사)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무인카페 운영자 A씨(37)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자신의 무인카페 출입문 내부에, 결제 없이 물건을 집는 초등학생 B군(8)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캡처 사진과 함께 "위 학생은 ○○일까지 연락 주세요. (○○일 이후 경찰 수사 예정) 또는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검찰은 A씨가 이 안내문으로 B군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암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학생의 얼굴은 식별 불가능하고, 범죄자로 몰아가려는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B군이 가져간 것은 수천원의 브롤스타즈 캐릭터 카드였지만, 무인점포 특성상 이런 일이 반복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어 연락을 받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해당 안내문이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았고, 범죄 사실을 적시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진은 정수리 방향으로 촬영돼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고, 머리 전체가 블러 처리돼 식별이 불가능하다"며 "문구에도 실명, 학교, 학년, 나이 등 인적사항이 없고 '절도', '도둑' 등 범죄를 단정하는 표현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형법 20조가 규정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형법 20조는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정당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형사 고소나 직접 제재에 앞서 자진 연락을 유도해 원만히 해결하려 한 것으로, 공권력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공익적 목적도 있었다"며 "사진은 얼굴 식별이 불가능했고, 안내문 표현도 중립적이며, 게시 장소와 기간도 과도하지 않았다.
긴급성과 보충성 요건도 갖춰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