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연행, 한미 경협에 악영향
비자 쿼터 확대 못한 정부도 책임
비자 쿼터 확대 못한 정부도 책임
미국 조지아주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던 한국 근로자들이 미 당국에 체포돼 구금된 사실은 충격적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당국과 국토안보수사국이 조지아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불법이민 단속을 벌여 450여명을 체포했는데 한국인 300여명이 포함됐다. 연행 과정에서 손을 묶는 등 무리한 체포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 정책에 부응해 한국 기업들이 수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던 현장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이민당국이 급습한 현장은 300만평 규모로 연간 전기차(EV) 30만대 분량의 배터리셀 양산을 목표로 한 공장이다.
2년 전 공사를 시작했고, 공정은 올해 마무리 단계였다고 한다. 최근 주요 생산장비 반입도 시작돼 내년 초 공장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사태로 앞날을 알 수 없게 됐다. 대미 투자를 서두르는 한국 기업들의 판단과 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한미 경제협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구금된 근로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무사 귀환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사전에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한 점도 따져야 한다. 기업의 해외 투자는 정부 간 협력을 전제로 이뤄진다. 기업이 해외에서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할 땐 사업상 어려움을 정부가 해결해 주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미국 투자도 마찬가지다. 현지 공장 운영을 위해 급파된 인력들을 무더기로 강제 연행하고 구금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비자 문제를 적극 해결하지 못한 실책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 현지 사무소에서 업무를 보거나 공장에서 일을 하려면 전문직 취업(H-1B) 비자나 비농업 단기 근로자(H-2B), 주재원 비자(L-1)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발급에 수개월이 걸리고 그마저도 개수가 제한돼 있다. 상당수 기업은 불가피하게 출장 시 비자 신청을 면제해 주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비이민 비자인 단기 상용(B-1) 비자를 활용했다고 한다.
이 비자 소지자들은 최대 6개월 동안 비즈니스 회의나 시장조사 같은 활동은 가능하지만 취업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전임 바이든 정부는 폭증하는 대미 투자와 맞물려 이런 편법을 묵인했으나 트럼프 정부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기업들도 이를 감지해 비자 쿼터를 늘려달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대적 단속은 현지인 일자리를 지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번 사건의 제보자라는 조지아주 정치인은 "세제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이 조지아 주민은 거의 고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조지아주 지사가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기업은 원하는 공정에 필요한 숙련공을 현지에서 구하기 쉽지 않아 난감한 처지다. 정부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조속히 미 당국과 현지 고용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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