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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만난 이혼, 그리고 사람들[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상속·이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29 13:47

수정 2025.09.29 13:47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가정법원 근무 당시 가사합의 재판부, 가사비송합의 재판부, 가사항소 재판부 및 가사항고 재판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이혼 사건을 처리한 바 있으며 현재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많은 가사 사건을 수임하여 처리한 바 있다. 법관으로 17년 근무했는데 8년 동안 가사사건을 담당했다. 가정법원 사건에는 이혼이나 재산분할뿐만 아니라 상속재산분할심판, 소년심판, 아동보호, 가정보호 및 후견사건 등도 포함된다. 정확하지 않지만 한달에 평균 100건 정도 처리했다고 가정했을 때 1년에 1,200건 정도를 처리했을 테고 8년간 계산하면 대략 10,000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변호사로 이혼이나 가사사건 관련해서 일주일에 평균 10건 정도 상담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변호사로 나온 지 19개월 정도 되었으니 860건(= 10건 × 4주 × 19개월) 정도 상담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오랜 재판 경험에 더하여 변호사로서의 실무 경험도 점점 쌓여가는바 오늘은 가정법원 판사로서, 가사 전문 변호사로서 실무를 처리하면서 실제 법정에서 마주한 이혼의 ‘극적인 풍경들’에 대한 감회를 나누고자 한다. 기상천외한 이혼 사례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인간 군상들의 욕망, 집착, 배신, 때로는 따뜻함과 용서까지 모두 담고 있다.

뒤엉킨 욕망 “크로스 불륜”

오랫동안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서로의 외도 상대 배우자와 맞바람을 피웠던 일명 ‘크로스 불륜’ 사건이다. 사건에 등장했던 4명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진 순간 모든 등장인물들은 할 말을 잃게 되었다. 경악스러웠던 상황 끝에 오히려 서로에게 넓은 마음을 보이며 조용히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그 사건의 결론은 오랜 재판 경험, 실무 경험 속에서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끝판왕인 사건이었다. 현재 그 4명이 모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완벽한 비밀

한 여성은 친구의 남편을 오랫동안 짝사랑하여 그 남자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밀한 함정을 만들었다. 친구와 젊은 남성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도록 유도한 뒤 그 증거를 친구 남편에게 건넸다. 이후 친구 부부를 이혼시키고 그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했으나 그 계획은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진실이 드러나자 이혼을 당한 친구는 자신이 믿었던 친구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고, 그 친구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늘 느끼지만 법정에서는 믿었던 인간들로부터의 배신과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과 광기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간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법조인은 이러한 상황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매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엄마, 왜 울어?”

엄마의 외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그 영상에는 네 살배기 아이가 외간 남자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엄마를 보며 그 엄마가 울고 있는 줄 알고 “엄마 왜 울어?”라고 묻는 장면까지 담겨 있었다. 해당 영상 속 성인 남녀는 동물보다 못한 존재들이었다. 성적 욕망의 충족이 1순위인 어른들의 삐뚤어진 행동이 결국 가장 약한 가족 구성원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다.

부모의 이혼을 원하지 않는 아들

33년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부부가 있었다. 그러나 배우자 일방은 10년 이상 몰래 부정행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 불륜을 발견한 건 상대 배우자가 아니라 그 부부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오랜 부정행위를 알고 매우 큰 충격에 빠졌으나 자신의 아버지가 그 불륜을 알게 되고 나서 받게 될 상심이 더 걱정이었다.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 아버지 몰래 사태를 잘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부정행위를 알게 된 아들에게 상간남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싫지 않지만 그 상간남을 더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런 상황을 아버지나 아들이 모르는 상태였다면 그대로 지낼 수 있겠으나 아들도 다 컸고 이렇게 모든 게 밝혀진 이상 혼인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부부는 이혼 소송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들이 써낸 탄원서를 읽게 되었는데 그 아들의 깊은 슬픔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유전자 검사로 인해 발생하는 케이스들

한 남성은 ‘임신’이라는 말에 덜컥 혼인신고를 했으나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남성은 바로 혼인취소 소송을 진행했고 단 한 번의 변론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직후 자신의 친자가 아님이 밝혀져 바로 혼인취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참 살다가 이혼 소송을 거치며 오랫동안 사랑으로 키워왔던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해당 남성들은 매우 큰 충격에 빠진다. 일부는 설령 친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슴으로 키운 아이들에 대해 친권 및 양육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관계 성립하지 않는 경우 친부가 아니므로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될 수는 없다.

더 이상 맞고 살지 않는다

한 남성은 20년간 혼인 기간 내내 아내에게 폭언, 폭행을 가하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으며, 육아에 무관심했다. 이런 경우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당연히 남성은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어야 했고, 자녀들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은 아내가 가져갔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케이스가 많지 않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방의 학대를 견디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 1회만 폭행을 당해도 이혼 청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경향성은 젊은 MZ 세대들에게 더욱 두드러진다. 통계상으로도 혼인신고 후 4년까지가 이혼율이 제일 높다고 보고 되고 있다.

마치며

이혼 소송의 법정은 혼인 관계의 끝과 새로운 시작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생의 아픔과 회복,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희망의 순간들이 쌓여 법정은 늘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60대 이상 노년 부부의 ‘그냥 싫어서’ 이혼, MZ 세대들의 쿨한 이혼을 지켜보며 이혼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각자 다른 행복을 향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주변에 이혼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현실적인 새출발을 굳건히 지지해 주는 것이 좋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