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범죄단지서 검거한 59명
자진신고 5명 등 총 64명 입국
'조직에 가담'은 가중 양형인자
속아서 간 피해자이자 피의자도
'미필적 고의' 인정 가능성 높아
자진신고 5명 등 총 64명 입국
'조직에 가담'은 가중 양형인자
속아서 간 피해자이자 피의자도
'미필적 고의' 인정 가능성 높아
캄보디아에서 불법 사이버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국내로 송환되면서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에 관심이 모아진다. 범죄단체를 통해 조직적으로, 지인을 포함한 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점, 범행 대상이 주로 사회적 약자였던 점, 솜방망이 처벌을 할 경우 유사 범죄가 우려되는 점, 국민의 법감정 등을 감안하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할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법정가면 중형 불가피
1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전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한국인 64명이 입국과 동시에 전국 경찰관서로 분산 호송됐다. 체포 시한은 20일 새벽 만료된다.
이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전자금융 사기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납치·감금을 당한 뒤 범죄에 가담했는지,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적극 가담했는지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만약 혐의가 특정되면 경찰과 검찰은 구속 여부를 결정한 뒤 추가 조사를 통해 재판부로 사건을 넘기게 된다. 법조계에선 경찰·검찰 단계에서 해외조직의 범죄 가담 피고인에게 사기,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 등 혐의가 적용될 경우 중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현행법상 일반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범죄단체조직·가입·활동죄는 일반 사기죄보다 형량이 높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범죄 조직에서 맡은 역할, 범죄 전력 여부, 피해 규모, 수사 협조 여부, 전과 종류 등에 따라 형량이 결정되며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면서 "사안에 따라 형량은 달라지겠지만 벌금형부터 5년 내외의 형량이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구지법은 지난 9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베트남에서 투자사기 목적으로 개설된 허위 사이트 고객센터를 관리한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투자하면 원금이 100% 보장되고 돈을 투자하면 3배에서 5배의 고수익을 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은 피해자들이 대포 계좌로 송금한 투자금을 분산 이체하는 역할도 했다. 1년간 200명 넘는 피해자에게 거짓말했고, 피해액은 100억원에 달했다. 법원은 "범죄단체의 해외본사팀 팀장급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며 "총책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이 사건 범행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여 다른 하위 역할 분담자들과 같게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속아서 가담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범죄 가능성을 인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면 유죄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판결에서 "방조범의 경우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해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족하다"고 밝혔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단순 가담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잇따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수·자백은 감형 요소
이들이 20~30대 청년과 경제적 약자 등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법원이 양형에서 불리한 요소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송환을 거부한 점도 고려 대상이다. 죄질이 나쁘고, 도주·증거 인멸의 시도로 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가벼운 처벌을 할 경우 유사 범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여론 역시 재판부 판단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현재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대규모 범죄조직은 미얀마 등으로 본거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잠잠해지면 다시 활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판부는 법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국민 법감정을 판결에 반영해 온 전례가 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지난해 2월 중국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가담해 200억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조직원 3명에게 각각 징역 13년과 11년, 7년을 선고했었다.
재판부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로 엄벌할 필요성이 크다"며 "특히 평생 모아 온 재산의 대부분을 잃은 피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다만 자수·자백을 근거로 형이 감경되거나 면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해석도 상존한다. 또 납치된 상태에서 범죄조직이 납치 당사자나 가족 생명에 위해를 가하거나 협박해 범죄에 내몰린 경우도 형법상 책임 조각 사유에 해당한다.
서준범 법률사무소 번화 대표변호사는 "자수할 경우 형법에서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자백도 일반적으로 정상참작 사유로 양형 고려가 된다"면서 "강요된 행위라는 것이 입증되고 신체나 생명에 위해를 가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면 책임이 조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형사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진 신고하거나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수사관들이 '공적 요소'라고 해서 관련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한다"며 "조직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윗선과 총책이 누구인지 자세하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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