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차관칼럼

[차관칼럼] AI시대, 관세행정의 비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19 19:09

수정 2025.10.19 19:09

이명구 관세청장
이명구 관세청장

실크로드가 열렸던 수천년 전부터 여정을 떠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도와 나침반이었다. 길이 아무리 넓어도 나아갈 방향을 모르면 걸음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 가치는 공허하다. 관세청이 '인공지능(AI)으로 공정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이라는 새 비전을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국경의 현실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연간 약 2억8000만건의 수출입 물품과 1억8000만건의 해외직구 물품이 오가고 위험 물품은 더 교묘히 숨어든다. 그러나 이를 감시할 인력과 예산은 한정적이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정상 화물의 신속한 통관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AI라는 새로운 행정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AI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 답은 AI 관세행정의 미래상에 있다.

첫째, 관세청이 그리는 미래의 국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입항 전 단계에서는 AI가 항만 감시시스템 데이터를 활용해 우범선박을 조기 선별하고, 화물의 위험도를 분석해 고위험 화물을 정밀 검사한다. 과거 적발 데이터를 학습한 AI X레이는 마약과 총기, 위해 식의약품을 자동 탐지하고 공항·항만 AI CCTV는 이상행동을 실시간 감지한다.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결합하면서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는 것이다.

둘째, 통관절차 또한 효율적이고 편리해진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를 AI로 자동화해 더 중요한 판단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입신고 심사가 빨라지고 위험도가 낮은 화물은 지체없이 통관돼 물류비용이 절감된다. 해외직구나 개인통관 민원도 24시간 AI상담 서비스와 다국어 안내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다. 행정의 효율화가 국민의 편의로 이어져 관세행정의 품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셋째, 무역환경은 한층 더 공정해질 것이다. 중소기업은 AI관세행정 안내 서비스를 통해 복잡한 국내외 관세·무역 정책을 쉽게 이해하고 대기업과의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다.

AI를 활용해 거래 데이터를 자동 분석해 비정상 거래패턴을 조기 감지하고 국산 둔갑 우회수출이나 가격조작 등 불공정 행위를 사전 차단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려면 기술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신뢰와 협력이다. 관세청은 의사결정의 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하는 설명 가능한 AI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정보와 기업 영업비밀을 철저히 보호하는 책임 있는 행정환경을 마련하려 한다. 동시에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민간 인프라와 공공 데이터를 결합하고, 학계·기업·국민이 참여하는 협력 생태계를 조성해 AI관세행정을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AI로 공정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기업의 성장을 도우며 공정한 무역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약속이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진정한 혁신은 방향을 잃지 않는 비전에서 시작된다.
관세청은 비전이라는 나침반과 AI라는 도구를 함께 손에 쥐고, 국민이 체감하는 더 안전하고 공정한 미래 행정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이명구 관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