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경제법률 형사처벌 전수조사
346개 법에서 형사처벌 사안 8403개
"주요 선진국 대비 과해...합리화 필요"
[파이낸셜뉴스]
346개 법에서 형사처벌 사안 8403개
"주요 선진국 대비 과해...합리화 필요"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는 협력업체 간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업계 간담회에 참석했다. 간담회 자리에서 A사 대표는 "최근 알루미늄 가격이 오르다 보니, 납품단가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했고, 다른 업체 관계자들도 어려움을 공유하며 향후 단가 조정 계획을 간략히 언급했다. 그는 이 발언이 빌미가 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혐의와 관련 조사를 받았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명시적인 가격 인상 합의나 계약이 없더라도, 사업자 간 가격·생산량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도 담합 합의로 추정할 수 있다. 부당공동행위로 판명될 경우, 징역(최대 3년)과 벌금(최대 2억원)이 병과될 수 있으며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면 최대 4중 제재가 가능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0일 경제법률 형벌 조항 전수 조사를 시행한 결과, 기업 활동과 관련성이 높은 21개 정부 부처의 소관 346개 경제법률에서 법 위반시 형사처벌(징역, 벌금) 항목이 총 8403개라고 밝혔다.
이들 전체 처벌 항목의 평균 징역 기간은 4.1년이었으며, 평균 벌금 액수는 6373만 원(징역에 상한이 없는 경우 형법상 유기징역 상한인 '30년' 적용, 벌금 산정 곤란한 경우 제외)이었다.
이 가운데 7698개(91.6%)는 양벌규정이 적용돼, 법 위반자뿐 아니라 법인도 동시에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벌규정은 실제 법 위반자 외에 관련 있는 법인 또는 사람에 대해서도 같이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한 규정을 말한다.
법 위반행위에 대해 '징역 또는 벌금'을 포함한 두 개 이상의 처벌·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항목은 2850개(경제형벌 8403개의 33.9%)에 달했다. 중복 수준별로는 △2중 제재 1,933개(23.0%) △3중 제재 759개(9.0%) △4중 제재 94개(1.1%) △5중 제재 64개(0.8%)로 나타났다.
일례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 간 가격·생산량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도 담합 합의로 추정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 40조에서는 정보교환행위에 대해 징역(3년 이하), 벌금(2억 원 이하), 과징금(매출액 20%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3배)등을 규정하고 있다. 대리점법 6조 구입강제행위도 징역(2년 이하), 벌금(1억 5000만 원 이하), 과징금(법 위반 금액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3배)를 명시하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실무자의 단순 업무 착오, 의도치 않은 자료 누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이를 형사처벌로 규율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형사처벌이 많다는 게 한경협 측의 설명이다. 대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경쟁법상 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중대 위반에 한정해 운용하고 있으며, 단순 자료 누락 등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가하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중복제재와 단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 제도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경영 리스크를 높이는 주요 요인"이라며,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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