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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대학, 선견적 지식시대 이끌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1.13 18:53

수정 2025.11.13 19:17

물새는 양동이 기약없이 채워가는
과거의 암기 지식교육에서 벗어나
선견적 지식 개척 주역으로 나서야
파격적 재정지원·안정적 연구문화
미래지향적인 여건이 자리잡아야
대학에 우수한 인력이 몰려온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대학의 도서관에서 '정숙'이라는 공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도서관 서가와 열람실 칸막이가 사라지고 카페풍의 자유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강의실에는 학습공간의 유연한 활용을 위해 바퀴 달린 책상과 걸상이 사용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동시 대형강의가 가능한 강의실, 학습관리시스템(LMS) 중심의 전방위 대화형 학습모델이 대세가 됐다. 이런 변화는 누수되는 양동이를 과거의 것으로 기약 없이 채워가는 암기 지식(bucket knowledge) 시대에서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선견적 지식(searchlight knowledge) 시대로의 대전환 징후들이다.



전례 없는 지식 혁명의 시대에, 최근 한 대학 대형강의 중간시험에서의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부정행위 논란을 접하며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첫째, 생성형 인공지능의 복사와 붙이기로 정답을 찾는 수준의 문제가 대학의 시험문제로 과연 적합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 강의가 다름 아닌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라는 점에서 더욱 혼란스럽다. 미국 IT기업 팔란티어가 '대학은 시간 낭비'라고 하며 능력주의 펠로십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10대 졸업생을 선발하는 시대에, 우리 대학 교육이 인공지능이 앵무새같이 전해주는 암기식 지식 전달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큰 문제다.

둘째, 생성형 인공지능이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시대에 인공지능의 효율적 활용 방법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아무리 잘해도 비서, 도우미, 혹은 옆자리의 친구 수준 이상이 아니다. 여행 계획을 대신 만들고 편지를 대필하는 정도가 가능하지만, 인공지능의 도움만으로 나의 취향과 필요를 완벽하게 소화한 여행 계획을 만들고 애인의 심금을 울리는 편지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은 지극히 표준화되어 실패의 위험부담이 덜한 초고 정도를 제공해 줄 뿐이다. 과거에도 우리는 도서관 서가의 백과사전 지식을 인용해 생각을 정리했는데, 지금 우리는 조금 더 효율적인 비서를 옆에 둔 셈이다. 능력 있는 비서를 굳이 해고할 이유는 없다. 인간이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 유능한 비서를 잘 활용하면 된다.

셋째, 대학의 온라인 시험시간 중 응시자의 움직임과 시선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일종의 포지티브 규제다. 할 수 있는 것을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다 허용하지 않는 포지티브 규제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제시해 주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자유롭게 허용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가 자연어 처리와 생성형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지향적 주제를 실제적, 체험적으로 학습하는 데는 훨씬 더 적합하다.

우리 모두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껏 고무됐던 바로 그다음 해인 올가을, 일본은 서른 번째 노벨상 수상의 쾌거를 거뒀다. 분야별로는 물리학상 12명, 화학상 8명, 생리의학상 6명, 문학상 2명 등이다. 우리는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경험이 전무하다. 2026년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이 35조원을 상회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 총액기준 세계 5위의 R&D 강국으로서는 매우 초라한 성적표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조남준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젊은 과학기술 인재의 우수성과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문화를 선도하고, 유행을 좇아 같은 길을 가는 연구가 아닌 독자적 장기 연구를 위한 자율성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혁신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에도 비슷한 제언을 한다. 글로벌 대학평가에서 아시아권 절대 강자인 싱가포르 대학들도 최근 중국 대학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39개, 8개, 89개 대학을 순차적으로 선정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최우수 연구인력을 흡인하는 데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미래지향적 연구 여건, 안정적 연구 문화가 자리 잡아야 대학에 우수한 연구인력이 몰려든다. 다음 세대가 생성형 인공지능이 주는 얄팍한 양동이 지식을 넘어서, 인류의 미래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매진해 선견적 지식을 창출하는 탁월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대학의 연구 문화 혁신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국가 대학 정책과 대학 지식 혁명의 첫 페이지를 다시 써야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