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론자의 미래 비전
무한 시장 피지컬 AI 주도권
제조 현장 데이터 장악에 달려
전자·자동차·조선·방산강국 韓
글로벌 표준 만들 잠재력 충분
자금 조달, 인재 수혈 원활해야
무한 시장 피지컬 AI 주도권
제조 현장 데이터 장악에 달려
전자·자동차·조선·방산강국 韓
글로벌 표준 만들 잠재력 충분
자금 조달, 인재 수혈 원활해야
작가 스티븐 위트에 따르면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불같은 사람이다. 위트가 3년간 황과 그의 주변 인물을 심층 인터뷰해 펴낸 황의 전기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2024년)'에 그렇게 나와 있다.
"황은 볼 때마다 매력적이고 자기 자신을 낮추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100명 앞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폭발하더군요." 입사한 지 몇 달밖에 안됐을 때를 떠올린 어느 직원의 말이다. 여러 증언을 종합해 보면 황의 분노엔 패턴과 의도가 있다. 분노의 장소엔 관중이 있어야 하고, 관중 전체와 실패를 함께 공유하는 식이다.
그의 무자비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는 사실 적지 않다. 사소한 업무로 실수를 범했던 어느 직원이 있다. 황은 임원 30여명 앞에서 그의 근무경력과 연봉을 물었다. 머뭇거리며 숫자를 말하자 황은 순식간에 지금껏 받은 보수를 계산해 그 액수를 전부 토해내라고 소리쳤다. 이 직원은 그로부터 석달을 악몽에 시달렸다.
회로기판 설계자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황이 창업을 하게 된 것은 알려진 대로 두 명의 괴짜 엔지니어의 제안에서 시작된다. 셋은 큰 욕심 없이 회사를 차렸다. 그랬던 황이 실리콘밸리의 일인자 야망을 언제부터 키웠는지 시점은 확실치 않다. 대충 경쟁사의 기술두뇌를 무차별로 빼오던 1996년 이후로 다들 짐작한다. 엔비디아로 넘어온 인재들은 기존 회사의 독점기술을 가져왔고 이로 인한 특허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소송을 낸 회사의 법적 서류엔 황을 '다스베이더'라고 지칭한 대목도 있다. 엔비디아의 지금을 만든 제품이자 세계 첫 그래픽처리장치(GPU) 지포스는 그 무렵 나왔다.
냉혹하기 이를 데 없긴 하나 이 면모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은 황이 가진 특유의 인간미 때문일 것이다. 분노의 순간을 제외하면 황은 소통과 교감의 달인이다. 그를 경험한 직원 대부분이 그에 대한 미담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 앞서 급여 전액을 토해낼 것을 요구받은 직원이 그 뒤 희귀병 진단을 받았을 때 치료비 전액을 사비로 부담하겠다고 나선 이가 황이었다.
황은 하루 14시간 이상, 주 80시간을 일한다. 그의 취미는 일과 이메일, 그리고 또 일이다. 새벽 4시에 수신된 이메일은 4시5분에, 5시에 보내진 이메일은 5시10분에 확인된다. 이메일을 보낸 직원들이 깜짝 놀란다. 돌아보면 황은 미래에 쓰일 것으로 확신되는 도구에 사실상 전부를 걸고 그 도구를 사용할 선수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엔비디아의 GPU와 쿠다, 병렬컴퓨팅은 괴짜 과학자들의 딥러닝을 만나 그렇게 인공지능(AI) 시대를 열었다.
젠슨 황이 새롭게 한국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을 이 연장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 황은 15년 만에 한국을 찾아 웃돈을 줘도 못 구한다는 최신 GPU 블랙웰 26만장을 풀겠다는 깜짝 계획을 발표하고 돌아갔다. 방한 첫날부터 삼성, 현대차 총수를 서울 강남 치킨집에 불러내 이 이벤트의 화제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자필로 써서 보낸 편지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엔비디아의 GPU 26만장은 삼성, 현대차, SK, 네이버와 정부 인프라에 골고루 돌아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보유한 고성능 GPU는 다 합쳐도 4만장이 전부다. 말로만 외친 AI 3강으로 가는 데 중대 고지를 밟을 수 있게 된 건 맞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실주의자 젠슨 황이 바라보는 미래다. 최근 실적발표에서도 확인됐듯 지금의 AI칩 장악력은 엔비디아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만년 2등 설움을 씻어내겠다는 AMD의 맹추격과 탈(脫)엔비디아를 가속화하는 구글, 메타 등 빅테크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황이 차세대 반도체 피지컬 AI 주도권에 전력을 쏟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피지컬 AI의 열쇠는 제조업 강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방산 등 제조현장의 무궁무진한 데이터가 피지컬 AI의 토양이다. 황이 원하는 AI 미래 설계도를 줄 수 있는 최적의 나라가 한국이다. 황이 미래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깐부' 엔비디아와 손잡고 AI 역량을 힘껏 끌어올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쇼룸으로 끝나선 곤란하다. 우리가 주도하는 제조업 AI 표준과 독자 생태계는 멀지만 가야 할 길이다. 못할 것도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결국엔 자금과 인재다. 정부가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를 기업 민원으로 깎아내리는 고압적인 자세는 별 도움이 못 된다.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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