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는 길에 전달" 승낙했다간 '마약 지게꾼' 된다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1 18:25

수정 2025.12.11 18:24

해외여행객에 접근해 마약밀수
"뭔지 몰랐다" 주장 입증 어려워
"모르는 사람 물건 받지 말아야"
#."중국 여행을 보내줄 테니 돌아올 때 물건만 받아오면 수백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한 주부 A씨 일행은 공항에서 처음 만난 전달책으로부터 밀봉된 물건이 부착된 속옷을 건네받아 그대로 착용한 채 귀국했다. 운반을 지시한 측은 "불법 물건이 아니고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한 금가루일 뿐"이라며 이들을 속였고, A씨 일행도 "내용물을 본 적이 없고 마약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수백만원의 대가와 신체에 밀착해 운반하게 한 방식 등이 통상적이지 않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여행객을 통한 마약 밀수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현장 단속과 예방 홍보에 나섰다. 최근 몇년 사이 국내 마약류 사범과 밀수사범이 급격히 늘어난 점도 대응 강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현지에서 무심코 들여온 물건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까지 포착되자 전문가들은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11일 본지가 경찰청에 요청해 받은 '최근 5년 마약류 사범 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1만3512명으로 나타났다. 마약 밀수사범은 2020년 104명에서 지난해 209명으로 2배 넘게 증가하며 5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 여행자가 마약밀수의 매개로 활용된다는 것은 국경 감시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세청이 발표한 올해 10월까지 국경단계에서 적발된 마약은 2913㎏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4배 많다. 이 중 항공여행자를 통한 적발이 가장 많아 505건에 달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08건에서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에 관세청은 내년에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미국·네덜란드 등 마약 출발 상위 5개국에 캄보디아·라오스·캐나다·독일·프랑스를 더해 총 10개국으로 합동단속을 확대하고 '마약판 코리안 데스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양국 국경에 세관 직원을 상호 파견해 우범 화물·여행자를 집중 검사한다는 취지다.

특히 정부는 겨울을 맞아 대마초 흡입이 합법화된 국가·지역이나 우리나라보다 마약 유통이 활발한 국가로 여행을 떠나는 해외 여행객들에 대한 경각심 제고에 나섰다. 공항 출국장과 항공사 데스크에는 해외 마약 예방 홍보물을 비치했고, 마약 노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칙과 핫라인 정보도 알린다.

실제 일본·동남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마 성분이 포함된 액상 담배·젤리류·음료 등이 유흥가에서 비교적 쉽게 거래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합법이더라도 이를 무심코 흡연·섭취하거나 소지한 채 귀국할 경우 국내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돼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일본 유흥가에서 건네받은 액상 담배 카트리지를 소지한 채 귀국했는데 알고 보니 대마 성분이 들어 있어 평소 마약과 무관한 일반인이었는데도 벌금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며 "해외는 우리와 금지 기준이 다르니 모르는 물건을 함부로 받거나 구매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여행객을 운반책(소위 '지게꾼')으로 끌어들이는 수법도 지속되고 있다.
"해외여행을 공짜로 시켜주겠다" "물건 하나만 들여오면 수백만원을 준다"는 말에 속아 마약을 들여오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경찰은 "부탁을 받고 마약을 국내로 운반하는 경우도 밀수로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진실 마약 전문 변호사는 "'몰랐다'는 주장은 입증이 쉽지 않다"며 "마약이 발견되면 운반을 부탁한 사람과의 관계, 부탁의 성격 등 경위를 확인하기 어려워 조사를 거치게 되고 결국 스스로 '혐의 없음'을 소명해야 해 쉽게 무혐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 문유진 변호사는 "높은 수익을 미끼로 소량의 물품을 운반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며 "마약 밀반입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한 중범죄라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