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길
은행 상담·기차표 예매 못해 좌절
70대 이상 두명중 한명이 디지털 문맹
효도폰·폴더폰 사용하는 사람들 많아
AI 서비스 소외되면서 경제적 손실도
"손주에게 영상 찍어 보내고 싶어"
디지털 교육하는 구로구 동행플라자
로봇바둑·카드게임 등으로 흥미 키워
젊은층과 소통 원하는 중장년들 몰려
첨단기술, 결국 인간 포용해야
전문가 "기계 어려워하는 노인들 많아"
자동화 도입해도 사람이 함께 보조하고
여행일정·식단짜기 등 맞춤 교육해야
은행 상담·기차표 예매 못해 좌절
70대 이상 두명중 한명이 디지털 문맹
효도폰·폴더폰 사용하는 사람들 많아
AI 서비스 소외되면서 경제적 손실도
"손주에게 영상 찍어 보내고 싶어"
디지털 교육하는 구로구 동행플라자
로봇바둑·카드게임 등으로 흥미 키워
젊은층과 소통 원하는 중장년들 몰려
첨단기술, 결국 인간 포용해야
전문가 "기계 어려워하는 노인들 많아"
자동화 도입해도 사람이 함께 보조하고
여행일정·식단짜기 등 맞춤 교육해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 있는가." 과거 배를 주리던 시절 부모 세대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런데 풍요로운 2026년, 질문이 달라졌다. "키오스크 작동이 서툴러 햄버거를 못 먹어본 적 있는가."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디지털 사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디지털 소외계층 가운데 특히 주목할 대상은 노년층이다.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희망의 단서들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디지털동행플라자 서남센터를 찾았다. 중장년층을 위한 디지털 체험 전용공간이다. 단순히 집합교육과 키오스크 작동법 설명에 그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깰 만큼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촘촘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디지털 단말기에 방문자 정보를 입력하면서 체험교육이 시작된다. 휴대폰을 열어 키오스크의 QR코드를 찍는 과정부터 디지털 문턱을 넘는 교육이 시작된다.
헬스장의 트레드밀에 설치된 '걷기왕' 코너 역시 디지털 환경을 구현했다. 디지털 화면에서 메뉴를 스스로 터치하고 걷기 혹은 뛰기를 스스로 조절한다. 두 명이 함께 경쟁하며 성취감도 느낀다. 디지털은 장벽이 아니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용자 경험 원칙을 반영한 코너다. '증강현실 스포츠' 코너는 화면에 나온 질문을 OX 표시로 푸는 게임이다. 펌프게임처럼 두 발로 폴짝 뛰면서 답을 맞히면 점수가 올라간다. 디지털을 이용해 뇌 활성화와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임이다.
'로봇 바둑' 코너에선 AI 바둑 로봇과 게임할 수 있다. 방문 당일 노부부가 함께 로봇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홀로 바둑 수를 곰곰 생각하며 바둑에 몰입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해피 테이블' 코너도 매우 인기가 많다. 이날 세 명의 할머니가 와서 카드 짝 맞추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드 위치를 기억해야 하니 자꾸 옆에서 말을 걸면 귀찮다"면서 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할 정도다. 그들의 어린 시절엔 이런 게임을 즐길 수 없었다.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에야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디지털 게임을 즐기면서 손 근력과 인지능력도 키운다.
센터 내 미션을 완수하면 로봇커피가 제공하는 무료 음료를 받을 수 있다. 센터의 공혜정 매니저는 "디지털 기기를 체험한 만큼 리워드(보상)로 음료를 제공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면서 "로봇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음료를 받기 위해 기기를 활용하는 것도 체험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중장년층이 이러한 디지털센터를 찾는 사연은 다양하다. 단연 건강이 우선이다. 디지털 기기로 따라 하다 보면 건강도 챙기고 우울증도 사라진다. 둘째는 가족과의 소통이다. 이들이 센터를 찾는 상담 중엔 이런 고민들이 많다고 한다. "아들한테 문자를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사진을 편집해서 손자에게 축하한다는 영상을 나도 보낼 수 있을까." "자식한테 맨날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배달을 시키고 싶다." 어떤 분은 손주를 위해 영화관을 예약해 주고 "할머니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어 센터를 찾았다는 뭉클한 사연도 있다.
노희숙 서울AI재단 동행플라자 팀장은 "어르신들은 기기 조작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비용 문제로 쩔쩔매거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면서 "자신감을 갖고 기기를 활용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체와 소통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체험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리스크에 노출된 노년층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만 간다. 예전부터 우려해왔던 기기에 대한 접근 장애는 여전하다. 노년층이 사용하는 휴대폰에 AI를 사용할 수 없는 기기들이 많아서다. 과거 폴더블폰 가운데 오래된 기종이라든가 저가의 효도폰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그렇다.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활용할 수 없는 기기들을 가지고 있다면 AI 서비스 접근 자체가 안된다. 저사양 기기 문제로 서비스 접근이 안되면 처음부터 좌절한다.
AI 서비스가 생활 전반에 확산된 점도 노년층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은행 콜센터에 AI 상담사가 도입됐다. AI가 처음 전화를 받고 상담도 하는데, 노인들의 발음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다 결국 상담원과 직접 통화하기 위해 복잡한 선택지를 누르는 '뺑뺑이'를 겪는다.
디지털 부적응은 생활의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고 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노년층이 통장을 인터넷으로 개설하지 못해 금리 혜택을 못 받거나, 기차표를 온라인으로 예매하지 못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다. 심지어 AI가 추천하는 정부 지원금이나 건강정보, 저렴한 상품 접근도 부담스럽다. 디지털 기기를 못 다룰 때 발생하는 경제적 피해보다 AI를 활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보와 기회의 손실이 훨씬 더 크다.
더욱 심각한 리스크는 AI 환각현상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상담센터에 접수되는 내용 가운데 AI 서비스 다운로드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 가령 챗GPT를 다운로드할 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온라인 검색창에 '챗GPT'를 검색하면 '가짜' 프로그램들이 쭉 나온다. 로고 모양도 엇비슷해서 웬만해선 구별하기 힘들다. 노년층 가운데 유사 서비스를 대충 다운로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콘텐츠의 질뿐만 아니라 이런 서비스는 유료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AI 정보의 신뢰성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전문가가 조언한 건강정보를 믿고 운동이나 건강식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정보를 확인해 보면 진짜 의사가 아닌 'AI 의사'인 경우가 많다. 잘못된 의학상식에 현혹돼 건강을 해치고 금전적 손해까지 본다. 이런 피해는 증권, 부동산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송민호 한국디지털포용협회 회장은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딥페이크나 AI 보이스피싱이 더 정교해지는데 노인들은 이를 구별할 능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공공의 영역에서 노인을 보호하는 AI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위한 기술' 지향해야
현장에서 제기하는 노년층 디지털 AI 격차 해소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론이 아닌 실용적 교육이다. 노년층을 위한 AI 교육의 핵심은 '기술 학습'이 아닌 '생활문제 해결'에 중점을 둘 때 효과가 크다. AI의 작동원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여행 프로그램 짜기, 건강 식단 맞춤형 메뉴 같은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원할 때 만족도가 높다.
둘째, 표준화 교육을 벗어나 다양화된 맞춤형 교육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디지털동행플라자의 경우 기초 단계는 스마트폰 음성 AI비서를 활용해 알람 설정, 날씨 확인 등 간단한 명령부터 시작한다. 심화 단계는 은행앱, 배달앱, 건강관리앱 등 일상 앱에서 AI 기능을 체험한다. 응용 단계에서는 난도 높은 프로그램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노희숙 팀장은 "노년층마다 디지털 사용 수준과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다층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급 과정에 로봇과 코딩 과정을 신설하는 등 진화하는 기술 속도를 감안해 획일적 교육을 탈피한 세분화된 맞춤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디지털포용협회가 마련한 'AI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활동력이 높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은 '교육-창작-출판 원스톱 서비스'라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자서전 전용 AI 플랫폼인 '마이 라이프, 아워 스토리'를 자체 개발해 수강생들의 디지털 친밀도를 높였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기록물로 남기고 싶은 욕구를 디지털 기기와 AI 솔루션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사람 중심 기술이 노년층을 포용하는 핵심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송민호 회장은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기계를 두려워하는 분들은 있기 마련"이라며 "정부는 'AI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는 곳에 반드시 사람도 함께 배치'하는 규칙을 만들어 기계와 사람이 함께 보조하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장년층이 디지털과 AI 활용에 뒤처지는 건 학습능력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조사가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이용하다 포기한 노인의 주된 이유로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가 꼽혔다. 뒷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는 미안함과 기계를 고장낼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손을 얼어붙게 만든다는 것이다. 디지털포용법과 AI기본법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둘 때 실효를 거둘 수 있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