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일면식도 없었는데 왜?…'15명 사상' 동대문구 다세대주택 방화범 범행 전말은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2.10 08:44

수정 2026.02.10 08:44

피해자 2명…전신 3도 화상·화상 쇼크사로 사망
평소 다툼 있던 주민 리어카에 불 질러
필로티 구조·탈출구는 한 곳뿐
범행 부인했으나 법원 받아들이지 않아
진술 번복하고 변명 반복
法 "사소한 다툼으로 범행…중형 선고해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오모씨(37)가 지난해 8월 16일 오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오모씨(37)가 지난해 8월 16일 오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빌라. 평범한 주말 밤이던 지난해 8월 12일, 4층짜리 다세대주택 주차장 한켠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건물을 뒤덮었다. 그날 화재로 2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방화를 저질러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은 1심에서 중형을 선고 받았다. 판결문에는 그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경위와 범행을 부인했음에도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기록돼 있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이동식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37)에게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오씨는 지난해 8월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4층짜리 다세대주택 주차장의 손수레에 있던 폐지 더미에 불을 붙여 2명이 사망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은 사소한 다툼으로부터 촉발됐다. 그는 해당 주택에 살던 주민 A씨와의 사소한 갈등을 이유로 A씨의 손수레에 있던 폐지에 불을 붙였다. 지난 2024년 11월 손수레를 끌며 퇴근하던 A씨에게 욕설한 것을 시작으로 "나랑 눈 마주친 이유가 있냐" "왜 리어카를 끄냐" "직업이 뭐냐"며 지속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오씨가 모욕적인 말을 하며 목을 때리고 협박하며 공동현관 안쪽까지 따라 들어오려 하자 A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A씨를 마주칠 때마다 그는 "술도 먹을 줄 아냐" "왜 이사를 안 하냐"며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A씨가 손수레에 폐지 더미를 넣어둔 채 심야 영화를 보러 간 사이에 오씨는 범행을 저질렀다.

오씨는 폐지 더미에 불을 붙인 기억은 없고 담배만 피웠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애초 지하 주차장에 있던 손수레 근처에 머무른 적은 있으나, 폐지 더미에 불을 붙인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설령 폐지 더미에 불이 붙었어도 만취 상태라 방화할 고의는 없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오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폐지가 쌓인 수레에 오씨가 불을 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구속 초기부터 경찰·소방과 협력해 증거 자료를 확보하고 영상 분석, 심리생리검사 등을 통해 그의 혐의를 규명했다.

지난해 8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서울 동대문소방서 제공
지난해 8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서울 동대문소방서 제공
오씨는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신뢰를 얻을 순 없었다. 오씨의 평소 주량은 소주 3병 정도인데 사건 당일 일행 2명과 함께 소주 4병과 맥주 7병을 나누어 마신 상태였고, 범행 전후 시간대에 나눈 메신저 대화 내역을 보면 띄어쓰기나 맞춤법 오류 등 오탈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씨를 태웠던 택시기사도 "술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고 취해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오씨는 진술도 수차례 번복했다. 최초 경찰 피의자 신문에선 "새벽에 출근하면서 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보지도 못했고 불이 난 사실도 몰랐는데 어머니로부터 연락받고 나서야 불이 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3차 피의자 신문에선 "출근길에 빌라 옆을 운전하며 지나가면서 화재 사실을 알게 됐다"고 번복했다.

전기 라이터의 심지를 닦으려다가 전기 라이터의 전원을 잘못 눌렀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지만, 라이터의 전원만 들어온 상태에선 CCTV에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갑자기 "플래시를 비춘 것 같다"고 말을 바꾸었다. 범행 무렵 휴대전화 두 대를 사용했는데 한 대만 제출하고 또 다른 휴대전화의 행방에 대해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빌라에 거주하던 2명이 목숨을 잃고 13명이 다쳤다. 피해자 B씨는 치료를 받던 중 일산화탄소 중독, 전신 3도 화상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화상으로 인한 쇼크사로 숨졌다. 그밖에 다른 부상자 13명은 인공 소생에 성공한 심장정지 등 상해, 약 12주간 치료가 필요한 천식 등 상해를 입었다. 재산 피해도 1억원 이상 발생했다.

지난해 8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서울 동대문소방서 제공
지난해 8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서울 동대문소방서 제공
해당 빌라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피해가 한층 더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필로티 구조인 주택엔 총 14세대, 26명이 거주했는데 주차장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아 불이 순식간에 번졌다. 거주자들은 공용 출입구로 나와 상시 개방된 건물 지하 1층 주차장을 통해서만 빌라 외부로 출입할 수 있어 화재 당시 대피하기 어려웠다.

아울러 발화 지점이 주차장 내부에 있었고 출입구에 인접해 폐지 더미에 불이 붙을 경우 불길이 천장과 건물 전체에 옮겨붙을 위험성도 컸다. 공기의 흐름이 원활하고 주변에 차량이나 폐지, 폐품 등 가연성 물질도 많았다. 전면을 제외한 3면은 모두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고 각 동은 옥상으로 피난할 수 없는 박공지붕 구조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범행 경위와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웃 주민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빌라에 방화해 다수의 사상자와 상당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며 "범행 후 도주를 시도하거나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합리성 없는 변명으로 일관할 뿐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등 범행 후 정황이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미필적 고의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까지 의도한 정황은 보이지 않는 점, 성실한 사회인으로 생활하며 꾸준히 봉사와 기부활동을 해온 점, 가족과 지인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보이는 점, 벌금형 전과 외에는 처벌 전력이 없는 점, 화재 발생 시 소방과 피난시설이 미비한 이 사건 빌라의 구조적 결함도 피해 확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오씨는 지난 4일 1심 선고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애초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도 같은 날 법원에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사건의 책임과 형량을 둘러싼 판단은 항소심 법정에서 다시 다뤄지게 된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