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초고속·저전력 반도체의 핵심은 메모리 소재가 전기를 켜고 끄는 ‘스위칭’ 원리에 있다. 한국 연구진이 아주 작은 전자 소자 안에서 물질을 순간적으로 녹였다가 얼리는 실험을 통해, 그동안 직접 관찰하기 어려웠던 스위칭 순간과 내부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서준기 교수 연구팀은 경북대학교 이태훈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기존에는 관찰이 어려웠던 나노 소자 내부의 전기 스위칭 과정과 물질 상태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는 실험 기법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팀은 전기 스위칭을 확인하기 위해 물질을 순간적으로 녹였다가 빠르게 식히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열에 민감해 전기를 흘리는 순간 성질이 쉽게 변하던 텔루륨(Te)을,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나노 소자 안에서 ‘유리처럼 불규칙한 상태의 비정질 텔루륨’으로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텔루륨(Te)은 금속과 비금속의 성질을 모두 가진 준금속 원소다.
이번 연구를 통해 연구팀은 스위칭이 시작되는 전압과 열 조건, 그리고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는 구간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열 발생을 줄인 상태에서도 안정적이고 빠른 동작 속도로 스위칭 되는 결과를 관측하는 등 ‘왜, 언제 전기가 켜지는지’를 이해한 원리 기반 메모리 소재 설계가 가능해졌다.
또 연구팀은 전류를 과도하게 흘리지 않고도 비정질 상태를 유지한 채 실험을 진행해, 전압이 스스로 커졌다 작아지는 ‘자가 진동’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복잡한 재료 조합 없이 텔루륨 단일 원소만으로도 안정적인 전기 스위칭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차세대 메모리 재료인 비정질 텔루륨을 실제 전자 소자 안에서 구현하고, 전기가 켜지고 꺼지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체계적으로 규명한 성과다. 연구 결과는 향후 더 빠르고 전기를 덜 쓰는 메모리를 구현하기 위한 반도체 소재 설계의 중요한 지침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남욱 석박사통합과정이 제1저자로, 김승환 박사과정이 제2저자로 참여했으며, 서준기 교수(KAIST)가 교신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월 13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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