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정 뭉칫돈 투입하지만
지방소멸 막는 실질 성과 없어
부산·대구·광주까지 위기 상황
‘지방소멸’ 공포마케팅보다
디지털AI시대에 상응하는
국토공간의 재조정 바람직
지방소멸 막는 실질 성과 없어
부산·대구·광주까지 위기 상황
‘지방소멸’ 공포마케팅보다
디지털AI시대에 상응하는
국토공간의 재조정 바람직
학창시절 조선 팔도 지명의 유래를 접했다. 경상도(慶尙道)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조합하여 만들었다고 배우면서 시대변화를 실감했다. 조선 후기 정조 연간 1789년 편찬된 국가통계인 '호구총수'에 따르면 수도인 한양에 이어 한반도 남부에는 상주와 전주가 2대 도시였다. 당시 행정, 군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현재는 평범한 지방도시로 변모하였다.
땅 자체는 자연적 산물이지만 사람들의 삶과 결부되면서 사회경제적 공간이 되고, 이름이 붙는다. 자원을 투입하여 도로와 철도가 부설되고 교량과 터널이 만들어지면서 가치가 생겨난다. 또한 시간이 흐르고 삶의 방식이 변하면서 공간의 성격이 달라지고 중심점이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철도 및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물류망 재편과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경제발전으로 인한 산업거점의 변화가 핵심적 요인이었다. 19세기까지 번성했던 상주, 전주, 공주, 강경 등이 위축되고 자동차·조선의 울산, 철강의 포항, 석유화학의 여수, 반도체의 수원 등이 부상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업시대 강줄기의 나루터 근방에서 유출된 인구가 산업시대 바다에 인접한 수출항구로 유입되는 흐름이 수반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터전을 옮긴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환경은 낯설고 두렵기 마련이지만 타향이라도 고임금 일자리와 우수한 교육환경 등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면 이를 감수한다. 인구의 이동, 도시의 부침이 부단히 진행되는 진화적 역동성의 동인이다.
이러한 측면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소위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기존 접근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이다. 현재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방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정부 재정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2022년부터 10년간 총 10조원이 배정되었고, 2025년에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에서 14조7000억원 및 지방교부세 및 국고보조금으로 150조원을 투입하였다. 이 외에 부처별로 별도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하지만 지역 활성화는 고사하고 지방소멸이라는 단어의 대상이 농촌이 아닌 중소도시를 거쳐서 광역시인 부산, 대구, 광주까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역설적으로 관련 정책의 효과가 부진할수록 이를 명분으로 지방 활성화를 위한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만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이 증폭되고 있다.
올해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다양한 구호와 정책을 내세우겠지만 대부분 중앙정부 재정을 끌어와서 해당지역에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본질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최선이겠지만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결국 한정된 자원의 낭비라는 부작용의 증폭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공간구조 재편의 본질은 전체 인구가 감소하면서 청년세대의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에 디지털 인공지능(AI)시대의 산업구조 변화가 중첩된 현상이다. 전통산업으로 번성한 도시가 정체되는 와중에 디지털 AI산업 발전으로 부상하는 거점에 MZ세대가 몰려드는 거대한 흐름을 기존처럼 자금을 투입하는 단순한 재정정책이나 단선적 생활지원정책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성장권역 납세자의 세금으로 수축지역 주민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현재의 기본 구조는 미래의 국가적 잠재력을 인적·물적 차원에서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들은 지방소멸이라는 일종의 공포마케팅보다는 지방수축의 현실을 인정하고 디지털 AI시대에 상응하는 국토공간 재조정이라는 방향으로의 개념 전환이 필요하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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