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누구도 살해할 권리 없어" 유죄 인정
[파이낸셜뉴스] 36주의 아기를 출산한 직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과 집도의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산모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실형을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4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윤모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원, 추징금 11억원을 선고했다. 집도의 심모씨에게는 징역 4년을 내렸다. 앞서 검찰은 윤씨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500만원, 추징금 11억 5016만원을, 심씨에게 징역 6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2024년 6월 임신 34~36주차인 산모 권모씨에 대해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해 태아를 출산한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어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이들의 공모로 피해자인 태아가 살해됐다고 판단, 엄중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다"며 "산모인 권씨가 임신 종결을 위해 피고인들로부터 수술을 받아도, 피해자가 태어난 이상 하나의 사람으로서 보호돼야 하고 누구에게도 살해할 권리가 없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피해자 생명 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태어나게 한 후 살해하기로 공모했다"며 "피해자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차디찬 냉장고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한 명의 생명으로서 마주했던 고통과 공포를 미뤄 짐작할 수 없고,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것은 피해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생명 존중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윤씨가 권씨의 진료기록부에 건강 상태를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했다고 꾸민 혐의와 사산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한 혐의도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산모인 권씨에 대해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권씨가 출산 후 입양이나 한부모 보호센터 등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재판부는 권씨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여성에게 양육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신체적·정서적으로 요구를 하고, 여성이 처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정에 따라 적지 않은 부담과 사회 생활과 학업의 어려움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담과 어려움, 성차별적 관습과 가부장적 문화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겪고 있고, 육아에 있어서는 더 큰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죄가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으로 효력이 상실됐음에도, 국회의 개선 입법 미비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규범적 공백과 혼란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권씨의 이러한 행동이 직접적으로 낙태죄 폐죄와 연관되지 않지만,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권씨가 국가 지원 등 주변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진단을 받고 임신사실을 범행 직전에 알았던 점 등을 참작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윤씨에게 환자를 알선한 브로커 2명은 각각 징역 1년에 추징금 2억 1995만원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200만원이 선고됐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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