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테헤란로와 서울로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3.11 18:18

수정 2026.03.11 18:18

김경민 국제부 차장
김경민 국제부 차장
테헤란로. 강남의 심장이다. 한국 벤처와 기술자본이 모여드는 곳이다. 이 화려한 빌딩 숲의 이름은 중동의 화약고에서 왔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폭음이 울리고 있다. 매일 출근하는 테헤란로에서 테헤란의 전쟁을 쓴다.

칼럼 대문마저 '테헤란로'라니. 기묘하다. 이 거리는 나중에도 테헤란로일 수 있을까.

이름의 기원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한국은 오일쇼크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중동의 자본이 간절했다. 서울시는 테헤란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바꿨다. 이란도 테헤란에 '서울로(Seoul St.)'를 만들었다. 수많은 한국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향했다. 그들이 벌어온 오일머니는 국가 발전의 종잣돈이 됐다. 철저하고 유연한 실리외교의 산물이었다.

반세기가 흘렀다. 두 도시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서울의 테헤란로는 '강남스타일'의 무대이자 자본주의의 상징이 됐다. 반면 이란의 테헤란은 미국의 타격 목표가 됐다. 그 세월, 우방과 적의 경계는 무너졌다. 1970년대 기회의 땅은 2026년 가장 거대한 지정학적 리스크로 돌변했다.

중동의 전면전은 곧 자본의 재배치 과정이다. 타깃은 글로벌 공급망이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언제든 판을 엎는다. 요즘도 지구촌이란 말이 통할까. 각자도생이다. 안보가 경제를 압도하는 시대다. 적어도 트럼프 시대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경고한 '경제적 파편화'는 시작됐다. 7000㎞ 밖 테헤란의 포성은 시차를 두고 테헤란로를 타격한다. 국제유가 변동성은 기업 마진을 거칠게 압박한다. 호르무즈해협의 긴장은 해운 물류비용을 치솟게 만든다.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에는 새로운 안보세금 같다.

세계 경제는 빠르게 블록화되고 있다. 이제는 누구의 공급망에 속했는지가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잠깐의 비용 상승보다 완전히 새로 쓰이는 글로벌 무역의 룰이 훨씬 무섭다. 셈법은 복잡해졌다. 한국 기업인들은 기술력 이전에 급변하는 진영논리의 낯선 허들부터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해법은 1977년 테헤란로 명명식에 담긴 '생존본능'에 있지 않을까. 당시 한국은 국가부도 위기 앞에 북한과 가깝던 중동 국가들을 '반공'의 잣대로 밀어내지 않았다.
이념 대신 자본을 택해 강남 개발의 마중물을 댔다. 진영이 경제를 삼키는 지금도 비슷하다.
어쨌거나 차가운 국익 중심의 실리가 첫째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