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까미난테>로 돌아온 나상천 꿈의 엔진 대표]
극작과 출신 K-POP 기획자, 창작 뮤지컬 작가·연출가로 변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찾아온 공황이 '멈춤'으로
K-POP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 실화 바탕 뮤지컬 제작으로 인생 2막
극작과 출신 K-POP 기획자, 창작 뮤지컬 작가·연출가로 변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찾아온 공황이 '멈춤'으로
K-POP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 실화 바탕 뮤지컬 제작으로 인생 2막
[파이낸셜뉴스] "길을 걷지 않으면 멈춰 있을 뿐… 걷다 보면 새로운 장면이 열립니다.“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짙게 깔리는 순간, 진짜 삶의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법인지도 모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굴곡이 있어야 삶이 주는 감동도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일테고요. 화려한 성공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의 고통을 겪고, 지독한 어둠 속을 걷다가 한 줄기 빛을 따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나상천 꿈의엔진 대표에게 '삶'이 그렇듯이요.
1990년대 후반 촉망 받는 희곡 작가로 등단해 연극 무대를 꿈꾸던 나 대표는 뜻밖의 계기로 가장 화려하고 상업적인 K팝 산업의 최전선에서 인생 1막을 시작했습니다. '걸스데이', '모모랜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수많은 아이돌을 기획하며 쉴 새 없이 내달리던 그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 상실의 아픔은 그의 삶에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화려한 성공의 무대에서 잠시 멈춰서서, K팝 대신 창작 뮤지컬을 들고 돌아온 나 대표를 만났습니다.
연극을 꿈꾸던 문학청년, 현실의 벽에 부딪혀 K팝에 뛰어들다
순수문학을 다루던 그가 가장 상업적인 대중음악계로 넘어가기 전, 그의 시작점에는 늘 '텍스트'와 '무대'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서울예대 극작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하고 창작마을 희곡 문학상에 써낸 희곡 '블랙박스'가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죠. 희곡 작가 겸 연출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극단에 들어가서 활동도 하고 작품도 제작했는데 잘 안 됐어요."
등단과 함께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전세금까지 털어 넣어 제작했던 연극이 크게 실패한 후, 그는 가족을 위해 방향을 틀어야만 했습니다. 빚을 갚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정한 거죠.
"내가 내 꿈만 쫓느라고 배고픈 가족들을 외면하고 있었구나, 돈을 벌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03년 정도에 '뮤직시티'라는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싸이월드와 뮤직샵을 공동 운영하던 회사였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하게 됐어요. 일주일마다 싸이월드 뮤직차트와 다른 음악 사이트의 '탑100'을 조사하고 왜 인기 있는지, 또 어떤 곡들이 유행에 민감한지 분석해서 홍보하는 일을 했죠."
대중의 감성 코드를 읽어내는 극작가의 능력은 3분짜리 대중음악 안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여기에 가수들이 녹음할 때마다 쫓아다니며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곡의 구성부터 뮤직비디오 제작까지 모든 현장들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쫓아다닌 그의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K팝 기획자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2009년 무렵, 지인이 아이돌 그룹을 제작한다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때 함께 한 곳이 드림티엔터테인먼트였는데, '걸스데이'를 제작할 때였죠. 그때부터 총괄 이사를 맡아 A&R(음반 기획)과 제작, 홍보 마케팅까지 전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요. 결과적으로 잘 되어서 업계에서도 인지도가 좀 생기고, 도와달라는 요청이 많이 오고 했던 것 같네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내고 찾아온 상실의 고통
나 대표는 '걸스데이' 이후로도 '모모랜드' 홍보 마케팅을 비롯해 여러 아티스트와 음반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내왔습니다. 그러나 20여 년을 쉼 없이 달리던 그는 어느 순간, 길 위에 덜컥 멈춰 서고 말았죠. 2017년 8월,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이어 떠나 보내야만 했던 시기였습니다.
"일이 잘 되고 성공할수록 개인사 쪽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아내가 아이를 낳고 몇 달 만에 아프기 시작했는데, 7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고 하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떠난 바로 다음 날,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어요. 그 아픔이 저까지 아프게 만들더군요."
감당하기 벅찬 상실은 그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안과 공황장애, 불면증이 한꺼번에 그를 덮쳤습니다. 일에 매달리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더욱 힘들어졌고, 열정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K팝 산업에서 계속 일하기 벅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어린 딸을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대형 아이돌 대신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해 제작하는 쪽으로 완전히 경로를 틀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러고도 사업이 잘 됐어요. 아티스트들이 연이어 음반 차트에 오르고 좋은 성과를 거뒀죠. 그러자 업계에서 오는 시기와 질투가 있었고, 그런 부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감당하기 어렵더군요.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 계속되면서 공황장애가 더 심해졌는데, 그때 같이 음반을 제작했던 지인인 김평희 대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자고 이야기해주셨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을 때 그 얘기를 들어서 떠나기로 결심했죠. 내가 바로 서 있지 못하면 아이도 제대로 돌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순례길을 걸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길어 올린 위로
그는 그렇게 무작정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 각지에서 출발해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를 걷는 긴 여정으로, 공황장애에 심각한 불안 증세까지 겪고 있는 나 대표에게는 아찔한 도전이었죠. 그런데 신기한 건 살기 위해, 혹은 죽기를 각오하고 떠난 길이었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자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솟구쳤다는 겁니다.
"각오는 했지만 걷다가 보니까 이 길이 정말 만만치 않은 길이더라고요. 매일 쉬지 않고 걸으면서 '진짜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는데, 막상 진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죽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걷기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같이 간 지인분도 말리더라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한 번 끝까지 걸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갈등하던 나 대표의 마음이 완전히 바뀐 것은, 현지에서 만난 스페인 가족의 집에서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길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당신 자신만 생각하며 걸어라.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면서 걷다 보면 '나 자신'과 만나게 될 거다. 나를 만나서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그때부터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거고, 그 사람이 천사인지 아닌지도 알게 될 거다." 그 순간 나 대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안 보였구나, 싶더군요. 누구도 내 아픔을 이해해주지 못하니 나 혼자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옆에 나를 이 길로 데려와 준 선배가 보이는 거예요. 이 사람이 나의 천사였구나. 모르는 내게 약을 건네준 외국인,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지나간 한국인, 길 위에서 만난 이런 사람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그때부터 웃음을 되찾고 남은 길을 걸었어요. 걸으면서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죠."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뮤지컬 <까미난테>로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나 대표는 기적처럼 마음을 치유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홀로 남은 딸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아빠의 '노잼' 순례길 이야기를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떠올린 게 바로 '뮤지컬'이었죠.
"어떻게 얘한테 아빠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경험들을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딸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뮤지컬을 만들면 극장 안에서 보고 재밌어하면서 '아빠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하고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다 싶었죠. 그 순간, 20년 전 제가 했던 일이 떠올랐고요. 대본을 쓰는 일 말입니다."
나 대표는 이후 한 번 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창작 뮤지컬 <까미난테>의 대본을 완성하고, 직접 노래도 만들어 붙였습니다. 상처 입은 청춘들의 서사 안에 나 대표 본인이 겪은 처절한 아픔과 회복의 과정을 투영한 작품인 <까미난테>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17개 넘버들을 추려 성스루(Sung-through) 형식으로 쇼케이스도 열었고, 앞으로 캐스팅 오디션과 장면 시연 쇼케이스를 거쳐 내년 10월경 본 공연을 올릴 계획입니다.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길을 걷다 보면 결국 '나 혼자서는 걸어갈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베풀며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잘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
그의 삶은 무대 위 공연처럼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와 예기치 못한 암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실의 고통으로 건강을 잃고 궤도를 이탈했던 그 시간마저도 더 깊은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자양분이 되었죠. 그래서 그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진심 어린 당부를 전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한 번 해보고 살아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해보는 겁니다. 길이라는 게 걷지 않으면 그 자리에 멈춰 있는데, 걷기 시작해서 계속 가다 보면 반드시 목적지가 나오게 돼요.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장면들이 열리는 거죠. 두려워도 한 걸음 내디뎌보면 멈춰서 있을 때 걱정했던 것들이 하나씩 해결될 거예요. 다시 주저앉는 한이 있더라도 한 발씩 내디뎌보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1막을 뒤로하고, 2막의 문을 연 사람들을 만납니다. 안정된 과거 대신 가슴 뛰는 불확실성을 택한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태도를 고쳐 쓰며 마침내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사람들. [괜찮아, 다시 인생] 이 전하는 다채로운 삶의 궤적이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길 기대합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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