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BTS와 광화문 물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6 18:31

수정 2026.04.06 18:32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
최근 필자는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월드스타 BTS의 실물을 볼 엄두는 못 냈지만 역사적인 현장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190개 국가로 실시간 송출되는 이번 행사는 새로운 문화적 질서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직감이 들었고, 이번만큼은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염원도 한몫했다.

기회를 살리지 못한 적이 있었다. 딱 10년 전, 전 세계 100개국의 시선이 서울로 집중된 순간이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바둑판 위의 승부가 아니라 되돌아보니 인류의 지성사가 뒤바뀌는 거대한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우리는 그 역사적 순간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하고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AI 주도권을 타국에 내어주고 말았던 아리고 쓰린 과거가 되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다시금 세계의 시선이 서울에 집중되었다. 단순히 아이돌 공연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저 '아리랑 쓰리랑'을 세계에 알린 문화 홍보행사도 아니다. 한국이 글로벌 문화의 표준을 제시하는 순간이다. 전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문화적 연대를 맺고 새로운 정서적 거버넌스와 플랫폼을 창조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10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광화문광장은 새로운 사회학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첫째, 갈등과 대립이 아닌 순수한 화합의 장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광화문 앞의 군집은 대개 억울함과 분노, 슬픔을 승화시켜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민중의 간절한 외침으로 가득했거나 승리를 갈망하는 응원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엇을 반대하기 위한 항거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아니다. 오로지 문화적 충만함을 나누고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모였다.

둘째, 자발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대거 참여한 행사라는 점이다. 국가적 차원의 동원이나 종교적 의무감 없이 오직 문화적 유대감 하나만으로 단 한 시간의 이벤트를 위해 바다를 건너 모이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 땅에 이토록 많은 외국인이 한꺼번에 집결했던 과거는 수·당의 침공, 몽골과 왜의 침략 그리고 유엔군 파견 등 무력의 집결이었다. 지금 광화문은 총칼 대신 응원봉을 든 이방인들이 평화를 노래하는 한마당이 되었다. 바로 이 응원봉이 상징적이다. 오스카 시상식에도 등장한 응원봉은 예전의 야광봉과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굿즈가 아니라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만드는 디지털 와이파이 소통 도구다. 전통이 첨단기술과 융합된 문화가 핵심이다. AI 시대 사람들은 서로를 연결하는 문화와 기술의 힘을 더욱 갈구하게 되어 있다. 불안하고 불투명한 시대에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여 위안을 얻는 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회복력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희망의 플랫폼이다.


필자는 늘 광화문을 찾았다. 정치적 찬반을 떠나 온 국민이 운명공동체로서 하나 되는 현장에 가 있었다.
광화문의 보랏빛 물결 속에 섞여 단절된 국가에서 연결의 문화가 꽃피는 역설적이면서도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