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광장] 숙제만 하는 경제팀으론 위기 못 넘는다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8 18:30

수정 2026.04.08 18:30

미·이란 전쟁 계기, 빠른 추경 편성
李대통령 주도, 최단기간 완료 성과
'일' 중심 대통령 리더십 긍정 평가
중동사태로 글로벌 경제 환경 급변
위기극복 위해선 시스템 힘이 중요
'받아쓰기' 경제 엘리트 탈피 시급
김규성 정치부장
김규성 정치부장
26조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가경정예산안'이 편성돼 지난달 31일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넘어가기까지 19일이 걸렸다. 추경 편성은 통상 40~50일이 걸린다. 추경 편성의 계기가 됐던 미국·이란 전쟁은 7일(현지시간) 일단 멈췄다. 하지만 전쟁의 악영향은 이미 우리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중동 원유 공급이 줄자 '석유화학 산업의 쌀'인 나프타는 공급부족에 내몰렸다.

종량제봉투 품귀현상에 이어 약을 담을 시럽병마저 부족할 지경이다. 생활·의료필수품이 이 정도면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다. 작전하듯 서둘러 추경 편성을 한 게 맞다. 그럼에도 추경 편성기간을 절반 이상 줄이며 역대 최단 기간에 마무리한 건 성과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휘봉을 쥐었던 정부의 추경안 편성은 빨랐다.

일을 중심에 두는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민과 직접 연결되는 행정을 해 봤거나 잘한다고 소문난 인재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청와대 내부회의에서도 틈 나는 대로 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중진들이 광역자치단체장 경선에 도전, 행정가로 변신을 꾀하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독주다. 추경뿐만이 아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중단, 주식시장, 관세, 기름값 등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성과도 있다.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지난 2일 조사 결과(한국갤럽) 기준, 67%로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윤어게인' 세력과 관계단절에 실패, 지방선거가 임박했음에도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효과를 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국민들이 이 대통령의 업무능력이 형편없었다면 점수를 주었을까 되묻고 싶다.

성과와 평판이 좋다면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이 대통령의 모든 일을 세심히 살피고 화두를 던지는 '만기친람'형 리더십은 속도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산담당인 기획예산처 공무원들이 코피를 쏟으면서 일사불란하게 일한 '전쟁추경'이 대표적이다. 다만 단점도 봐야 한다. 행정을 잘 아는 대통령이 구체적 지침까지 내리고, 국무회의는 TV 생중계가 보편화됐다. 공무원의 '복지부동' 일상화를 불러올 수 있다. 공개적으로 면박을 당할 수 있어 아예 이견을 말하지 않고 받아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만약 장관이 이렇다면 현장 정책실무자는 말해 무엇할까.

중동 사태가 발발한 2026년을 1929년, 2008년과 비교하기도 한다. 대공황, 금융위기 때다. 그만큼 글로벌 경제환경은 급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중동 사태로 "한국이 비전투국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큰 폭인 0.4%p 낮췄다.

국가생존을 최우선에 두면서 중동 사태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만 보여서는 현재의 난국을 돌파하기 힘들다. 대통령이 모든 걸 할 수 없다. 설령 알더라도 다 할 수 없다. 국가적 어젠다, 사회적 대타협은 시스템의 힘이 중요하다.

시대의 조류가 경제정책 전반에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퇴조와 함께 국가자본주의의 득세가 예견된다. 경제정책 전반에 정부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면서 위축된 일본 경제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핵심 정책은 재정 활용이다. 훌륭한 정책은 창의적 사고에서 나온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해 10조엔(약 93조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관세를 지렛대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도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핵심이다. 한동안 국가가 산업정책에 과도한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려 실패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하지만 공급망 교란, 지정학 갈등 등의 대외 위협으로부터 경제를 지키고 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 개입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란전쟁이 미국의 글로벌 위상 변화와 관련,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예스맨' 경제팀, '받아쓰기'형 관료조직으론 경제위기급 고비를 넘을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추경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이 상황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적 전략을 짜낼 수 있는 경제정책 엘리트의 복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실존적 생존전략을 다각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다.

mirror@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