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40대' 뜻하던 영포티, 조롱 표현으로 변화
사무실 농담·회식 질문이 청년층 불편한 경험으로
사무실 농담·회식 질문이 청년층 불편한 경험으로
한때 '젊은 감각을 지닌 40대'를 뜻하던 영포티는 이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말이 됐습니다. 젊게 살고 싶은 40대와 그 모습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2030의 시선은 어디에서 갈라졌을까요. 영포티라는 말에 담긴 일상의 불편함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1. 오전 회의 10분 전. 20대 직원 두 명이 유튜브 쇼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옆자리 40대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 나도 봤어. 요즘 애들 이 말 쓰잖아." 팀장은 유행어도 따라 했다.
#2. 회식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40대 선배가 "나는 아직 MZ랑 통한다"고 말한다. 젊은 직원들이 가는 술집과 음악 이야기도 꺼낸다. 대화가 연애, 외모, 주말 일정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말한 사람은 농담으로 여긴다. 듣는 사람은 선을 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포티(Young Forty)'라는 말의 뜻이 달라지고 있다. 원래는 젊은 감각을 가진 40대를 뜻했다. 자기관리에 적극적이고 취향을 즐기는 중년이라는 의미였다. 최근에는 젊은 척하는 40대, 젊은 세대와 어울리려다 선을 넘는 40대를 비판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칭찬으로 출발한 '젊은 40대'의 달라진 쓰임
영포티는 영어 'Young'과 40대를 뜻하는 'Forty'를 붙인 말이다. 처음에는 마케팅 용어에 가까웠다. 예전 중년과 달리 소비와 취향에 적극적인 40대를 설명할 때 쓰였다.
최근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졌다. 온라인에서는 "젊게 산다"보다 "젊은 척한다"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젊은 세대의 말투와 문화를 따라 하면서도 직장 안에서는 나이와 직급을 앞세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는 젊은 취향 자체에 있지 않다. 40대가 유튜브를 보고 최신 음악을 듣는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층은 말투와 행동이 선을 넘는다고 느낄 때 이 단어를 쓴다.
영포티를 부정적으로 만든 '젊은 척' 이미지
한국리서치가 지난 8일 공개한 '영포티 현상에 대한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영포티라는 말을 들어본 응답자 850명 중 50%는 이 단어를 부정적으로 봤다. 조사는 지난 2월 6~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부정 평가는 20대와 30대 남성에게서 가장 높았다. 보고서에서 2030 남성의 63%는 영포티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자들이 떠올린 이미지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영포티에서 가장 많이 떠올린 이미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척하는 40대'였다. '젊은 세대의 패션이나 취미, 문화를 무리하게 따라 하는 40대'라는 응답도 비슷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40대'라는 답도 많았다.
회의실 농담과 회식 질문에서 생기는 불편함
사무실에서는 농담도 직급을 탄다. 팀장이 유행어를 따라 하면 직원은 일단 웃는다. 상사가 사적인 질문을 하면 대답을 고른다. 질문이 불편해도 바로 끊기 어렵다.
"요즘 애들은 어디서 놀아", "연애는 안 해?", "주말엔 누구 만나?"
묻는 사람은 가볍게 말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다음 회의도 있고, 평가도 있고, 다음 날도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을 봐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커진다. 술자리의 농담은 업무 시간보다 쉽게 사적인 질문으로 넘어간다. 친해지려는 말이 부담으로 들릴 수 있다. 특히 말하는 사람이 선배나 상급자일 때 그렇다.
최근 영포티는 이런 행동을 비판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젊게 입는 40대 전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젊은 직원들과 친해지려는 과정에서 사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젊은 세대의 문화를 따라 하면서도 권위적인 태도를 보일 때 이 말이 붙는다.
젊게 사는 것과 선을 넘는 것 사이의 차이
모든 40대가 이런 이미지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40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젊게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조롱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청년층이 문제 삼는 지점은 따로 있다. 젊은 취향을 갖는 것과 젊은 세대의 사적인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최신 유행을 아는 것과 그 유행을 이유로 거리를 좁히는 것도 다르다.
보고서에서도 이 차이가 나타났다. 18~29세 응답자의 60%는 영포티라는 말에서 '젊은 이성에게 부적절하게 접근하는 40대'를 떠올렸다. 청년층에게 이 단어가 단순히 옷차림이나 취향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동한 한국리서치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영포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경제적 기득권에 대한 반감보다 구체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그는 "대중이 느끼는 영포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경제적 기득권에 대한 반감보다는 젊은 척하거나 권위주의적인 태도, 부적절한 접근 등 구체적인 행동 양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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