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보수적이던 법조계에 인공지능(AI)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사법부의 재판 지원부터 법무부의 범죄 예방, 검찰의 수사 보조에 이르기까지 AI 활용 범위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추세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 2월부터 내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한 '재판지원 AI'를 시범 운영하며 업무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법관이 문장 형태로 질문을 입력하면 질의 의도를 파악해 관련 판례와 법령, 실무제요 등을 즉각 제시한다.
특히 외부 거대언어모델(LLM)과 분리된 '폐쇄형' 구조를 채택해 사법 정보의 보안성과 독립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AI 활용에 관심이 많은 한 지방법원 판사는 "법령이나 형사·민사 실무제요 등과 관련해 재판 절차적인 문제를 물어볼 때 효과가 있었다"며 "예컨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 불출석 시 개정할 수 있는 요건을 알려줘'라는 질문 같은 게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키워드가 잘 안 떠오르는 경우 문장 형태로 검색할 때 활용한다"고 전했다.
다만 현재의 AI는 단순 검색 도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보안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인 소송 기록을 분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와 검찰 역시 안전한 사회 구축을 위해 AI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법무부의 대표적인 성과는 '전자발찌 범죄징후 예측 시스템'이다. AI가 대상자의 이동 경로와 생활환경 변화를 실시간 분석해 재범 징후를 감지하면 관제센터에 알람을 보낸다. 마약사범 추적 기술 접목, 교도소 내 수용자 관리, 종이 기록물 디지털화 사업 등 분야에서도 AI가 폭넓게 활용 중이다.
검찰은 형사사건 처리 속도를 단축하기 위한 대안으로 AI를 주목한다. 검찰의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18년 126.8일에서 2024년 312.7일로 6년 만에 2.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에 검찰은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해 서류 작업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검찰 특화 생성형 AI 모델 개발을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용역을 발주해 중장기 로드맵 수립에 나섰다.
하지만 기술 확산 이면에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민간 AI 서비스를 활용할 경우 수사 기록 유출 위험이 있어 실제 법리 검토 등 제한적인 분야에만 사용될 수밖에 없다. 또 오는 10월로 예정된 '검찰청 폐지' 논의는 기술 도입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조직의 존폐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AI 인프라 구축 사업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제기된다.
결국 법조계 AI 도입의 성패는 기술적 안전성 확보와 조직적 안정성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사법 영역에서 AI 도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법적 규제와 안전 기준을 정립하면서도 정치적 변수 속에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피력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최은솔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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