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철원은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준(準)분지 형태의 평야 지대로, 한탄강과 그 지류들이 흐른다. 주변의 물과 흙이 모여 쌓이기 쉬워 수해에 취약했지만 군작전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사방(砂防)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결국 피땀 흘려 일군 옥토는 장마철마다 다시 폐허가 됐다.
지뢰와 수해의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집단갈등조정국이 출범한 지난 1월 27일, 마현리 주민 328명은 집단민원을 신청했다. 유실지뢰와 수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다. 유실지뢰 매몰이 추정되는 마현천의 준설은 군의 지뢰제거 작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간 국지적 지뢰탐지는 진행됐으나 인력·장비·예산 등의 부족을 이유로 근본적인 대책은 추진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민원에는 몇 가지 공통된 요인이 있다. 첫째는 경직된 법령이 다양한 현실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를 만드는 경우, 둘째는 다수의 기관이 관련된 민원인 경우, 셋째는 큰 예산이나 많은 인력이 필요하거나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경우 등이다. 마현리 주민들의 집단민원은 이 세 가지 요인이 중첩되어 있었다.
다행히 국민주권정부 들어 관계기관들이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법령을 정비한 국방부는 전담조직을 구성해 인력·장비 등 정책적 지원을 추진하는 등 중앙부처는 물론 강원도, 철원군 등 지방정부도 신속하게 나서고 있다. 당장 4월부터 대대적인 지뢰제거 작전과 하천 정비사업이 시작될 것이다.
올봄 마현리 주민들께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민통선 내 이른바 민북마을인 마현리 주민들은 출입을 통제하는 13민통초소의 이전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2023년 1월 국민권익위의 조정으로 이전이 확정됐다. 그런데 군사적 이유로 그 이행이 3년 이상 지연되다가 마현천 유실지뢰 제거 및 준설 조치와 함께 4월부터 출입통제를 전면 해제하기로 했다.
이 모든 사항을 확정하는 현장조정을 위해 올봄이 가기 전 철원을 찾을 예정이다.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떠났던 1984년 이후 40여년 만의 방문이다. 나라를 지키던 청년은 이제 국민의 해묵은 민원을 해결하는 국민권익위원장이 되어 마현리 주민들의 오랜 염원을 풀어드리려 한다. 이제는 지뢰와 수해의 위험이 없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땅에서 주민들이 희망을 뿌리고 행복을 거두기를 바란다.
정일연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