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우려되는 한국의 ‘전업 자녀’

김기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3 18:33

수정 2026.04.23 18:33

김기석 경제부장·정책부문장
김기석 경제부장·정책부문장
'전업(專業) 자녀'라는 단어가 있다. 어색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전업은 생계의 주된 활동으로 특정 일을 전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업 투자자, 전업 작가, 전업 강사, 전업 유튜버 등이 있다. 자녀는 말 그대로 아들과 딸이다.

두 단어를 합하면 생계의 주된 활동으로 아들과 딸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이 낯선 단어는 지난 2023년 중국에서 등장했다. 당시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21.3%로, 10명 중 2명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사회에서 밀려난 청년들이 선택한 마지막 안전망은 '부모'였다. 이들의 일상은 부모를 위한 아침·저녁 식사 준비, 청소, 심부름 등으로 채워진다. 사실상 전업주부처럼 가정을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그 대가로 받는 돈은 임금인지 용돈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장난처럼 등장한 이 단어는 이제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지난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실업자 수는 26만9000명, 30대 실업자는 18만9000명이다. 실업률은 각각 7.6%, 3.3%이다.

수치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의지가 꺾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을 기준으로 청년층의 '쉬었음' 인원은 70만명을 넘어섰다. '쉬었음' 인구는 취업 준비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청년층이 사회 밖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인한 일할 수 있는 기회 축소, 고령화에 따른 정년연장 추진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의 고립은 자발적 선택은 아니다.

데이터처에 따르면 고용주가 원하는 경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원하는 임금 수준의 일자리가 없어서 쉬고 있다는 응답이 주를 이룬다. 청년은 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시작할 최소한의 진입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노동시장 입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 문제의 엄중함을 인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고용절벽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해야 한다'며 청년 문제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현재의 일자리 정책은 여전히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여전히 2배 이상 벌어져 있고, 기업들은 신입보다 즉시 전력감인 경력직 채용을 선호한다.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결혼은 늦어지고 출산은 더 멀어진다. 지난 2월 합계출산율이 0.93명까지 올라왔다. 한때 0.7명대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반등이다.

그러나 청년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독립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이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출발선에 서지 못한 청년에게 다음 단계를 요구하는 셈이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반등도 오래가기 어렵다. 결국 청년 실업은 고용 문제를 넘어 인구구조를 흔드는 문제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주문대로 현실적 대응이 필요하다.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청년이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주거 지원, 첫 직장 진입 보조금 그리고 대·중소기업 간 이중구조 개선과 같은 근본적인 수술이 시급하다.

이 경고를 외면한다면 '전업 자녀'는 일부의 상황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가 된다.
정년연장으로 부모님은 밖에서 일을 하고 자녀는 집안 일을 하는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경제부장·정책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