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이 우리는 시간을 허비했다.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챗GPT나 제미나이의 월 구독료만 봐도 그렇다. 유료 구독자 350만명이 매달 평균 2만5000원만 지출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1조원이 넘는다. 정확한 규모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만큼 달러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경상수지 악화는 뻔하고 원화 약세도 무시하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AI 전쟁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AI가 등장한다. 생활 깊숙이 AI가 들어와 있다. AI에 길을 묻고, 뭘 먹을지 추천받는다. 글로벌 AI 전쟁은 누가 더 효율적으로 돈을 아끼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빠르게 도전하고, 누가 더 과감하게 실패를 감수하느냐의 싸움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멈칫거렸다. 정부나 기업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하다 딜레마에 빠졌다. 혁신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정부는 무난한 행정지표에 매몰됐다. 기업은 단기적인 장부상의 이익에 집착했다. 그사이 AI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멀리 가버렸다.
'합리적 딜레마'를 탓하는 시간도 아깝다.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먼저, 정부는 데이터센터 지원을 창업정책과 묶어야 한다. 정부가 데이터센터에 돈을 넣고 끝내면 정책효과는 네이버의 설비투자 실적으로만 남는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지원을 창업정책과 묶으면 파급효과는 커진다. 소상공인 상담, 지역 관광, 제조 중소기업의 품질관리, 물류 수요 예측 등 AI 서비스 창업의 확장 가능성은 크다. 국민성장펀드의 성과지표도 바뀌어야 한다. 대출 규모보다 창업기업 수, 생존율, 매출, 고용, 해외 진출, 중소기업 생산성 개선, 공공서비스 적용 건수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네이버 지원이 얼어붙은 AI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된다.
네이버도 책임이 있다. AI 서비스 창업기업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서버를 빌려주는 수준이 아니다. 데이터에 네이버의 경험을 더하면 창업기업은 빠르게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네이버도 인프라 개방에 경쟁보다 공존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공공자금이 들어간 인프라는 최소한의 공존 원칙이 필요하다.
AI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 한국은 AI 창업기업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기반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의 투자가 딜레마에 빠진 AI 생태계를 깨웠으면 한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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