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6개월간의 줄다리기 끝
2026년도 임금협약 서명 마쳤지만
사업부문간 편가르기·갈등 불씨 여전
우리사회 전반의 분배 논란으로 확산
이익 나누는 '잣대' 개인마다 다르고
얼마나 왜 나눠야 하는지도 논쟁거리
'성장과 균형'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
삼성전자 노사가 2026년 임금협약에 서명했다. 지난해 12월 임금교섭 테이블이 마련된 이후 타결까지 꼬박 6개월 걸렸다. 협상 과정에서 영업이익 15%를 성과급으로 떼내어 1인당 최대 6억원을 지급하라는 노조안은 우리 사회를 둘로 갈라놨다. 국가 반도체 산업 위기론과 부의 양극화 논란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삼성전자 노사 간 집안싸움에 전 국민이 뛰어든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은 삼성전자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분배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후반전은 이미 시작됐다. 이익에 관여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냉철한 분석과 묵직한 과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내 편"만 있고 "우리 편"은 없다
노조가 성과급을 요구하고 쟁의권을 사용하는 건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노동기본권 행사다. 노조가 자신들의 직장에서 권리를 행사하는데, 외부인들이 노조 좌표 찍기하며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여론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공감능력이 여론전을 주도한다.
불현듯 사회적 이슈를 빨아들였던 의료 사태가 오버랩된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간 충돌이 국가적 혼란을 낳았다. 의대 증원 논쟁에 대한 시시비비와 별개로, 여론은 의료계의 엘리트주의와 기득권 밥그릇 지키기라는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자기 몫 지키기에 급급해하는 이미지는 사회적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삼성전자 노조도 독점적 권한을 쥔 엘리트 기득권층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내가 없으면 회사 생산라인은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칼자루를 쥔 집단행동이 시민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동기와 명분을 함께하는 동조세력이 많을수록 공감을 얻는 데 유리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전형적인 기존 노동조합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전통적 노동운동은 협상 조건으로 생계보장을 앞세운다. 사회의 관행을 넘어서는 과도한 요구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또 기존 노조는 연대를 협상의 경쟁력으로 활용한다. 그들만의 이익 외에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 혹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명분으로 내건다. 그 연대 방식이 노조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낳지만, 집단이기주의가 자초하는 고립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분열된 점도 이번 사태를 키운 원인이다. 삼성전자 DS와 DX 부문 직원들이 스크럼을 짜도 협상력이 부족할 판에 내부 총질로 일관했다. 한때 삼성 계열사 직원들은 삼성전자를 부러워하며 스스로 '삼성후(後)자'라 깎아내렸다. 이제 그 서열의 정점은 DS가 차지했다. 집안 사람끼리 배척하니 연대는 물 건너갔고, 삼성 내에 '노노 갈등'이라는 분란만 남았다. 삼성 생태계를 떠받치는 수천개 협력사와 하청 노동자들의 이익은 처음부터 협상 테이블에 없었다.
■공정에 대한 엇갈린 시선
이익을 나누는 기본원칙은 능력주의다. 다만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가 다양해 갈등을 낳는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이 전형적인 사례다.
분배 공정성이란 단순히 '내가 얼마를 받았나'를 따지지 않는다. 내가 회사에 기여한 만큼 받은 보상이 남과 비교해 낮다고 느끼면 강한 불만이 생긴다. 애덤스의 공정성 이론에서 강조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런 면에서 삼성전자 DS 노조의 진짜 비교대상은 외부에 있었다. SK하이닉스에서 영업이익 10% 성과급 이야기가 나온 게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을 촉발했다고 보는 게 개연성이 높다. 1등 삼성전자가 2등 SK하이닉스보다 못 받아서야 되느냐는 자존심이 작동한 것이다.
DX 부문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기업 경영은 한 해 손익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DS가 적자에 허덕일 때 DX가 벌어다 준 수익이 투자와 운영을 떠받친 시절이 있다. 사업부는 달라도 법인은 하나였다. DX 직원들이 이익을 나눌 동등한 자격을 주장하는 논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현실의 협상 테이블은 냉정하다. 성과급은 올해 번 돈을 기준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나눈다. 이 지점에서 DS와 DX 간 공감대는 무너지고 만다.
삼성 조직문화 내 의사결정 과정도 냉철히 짚어봐야 한다. 노조는 회사 이익이 어떻게 얼마나 나왔으며 배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불투명하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산정 방식인 경제적부가가치(EVA)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직원들은 EVA 산출 과정을 알 수 없으며 일방적으로 통보받는다며 '블랙박스 EVA'라고 부른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 있다면 노조가 얻어낸 '영업이익 10.5%'라는 기준을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 남보다 덜 받더라도 절차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더 못 참는 게 일반 정서다.
이처럼 사측이 정보의 불투명이라는 지적을 받은 반면 DS 노조는 교섭 과정을 독점해 절차를 어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 내 최대 조직인 DS 중심의 초기업노조가 협상 테이블을 주도하면서 DX 직원들이 받은 소외감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공유는 '왜 얼마나' 해야 하는가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이익을 나누는 방식에서 절정에 이른다.
협상 초반엔 현금으로 성과급을 주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잠정합의안에서는 성과급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고 일정 기간 매각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 기업들의 성과급 지급방식은 현금 지급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단기 현금 보상은 부작용이 많다. 직원은 올해 현금 보상을 받으려고 분기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 마련이다. 반면 글로벌 빅테크들은 현금 대신 자사주로 성과급을 지급한다. 아울러 고난도 영업실적 목표를 달성할 때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조건도 단다. 이런 보상방식은 기업의 장기적 가치에 효과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사가 한배를 탔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노사가 막판 도출한 잠정합의안은 이런 유형의 보상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노사 간 성과급 공유 문제는 절충선에서 봉합됐지만, 외부 이해관계자들과의 공유라는 큰 숙제가 남았다. 대표적으로 이번 합의안에 포함된 '상생협력기금'이다. 이 기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 끼워넣은 조항이다. 그런데 기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다. 협력사별 이익 배분비율과 혜택을 누릴 하청의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차례 논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성과와 분배의 균형, 갈 길이 멀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사회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
먼저, 연공서열주의와 성과주의의 혼재를 혁파하는 문제다. 두 원칙이 관행으로 섞이다 보니 성과급 산정기준도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며 성과에 따른 보상을 내세우면서도 막상 분배할 땐 같이 나누자는 평등주의가 고개를 든다. 투명한 인사평가와 보상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개인의 기여를 측정하는 기준도 애매하다. 자본주의 황금률은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다"였다. 그런데 이 문구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흔히 능력주의는 개인의 역량과 부모의 지원, 그리고 운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본다. 이 공식을 삼성전자에 대입해 보자. 이익의 기여도는 숙련된 직원들의 노력에, 국가의 반도체 정책 지원과 AI 수요 폭증이라는 시대적 호황이 맞아떨어진 합작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일부 노조원은 개인의 실력을 이익의 핵심 원천으로 볼 것이다. 이익 기여도에 관한 이해관계자들의 생각 차가 너무 크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몰고 올 이익공유 담론도 맞이할 때가 왔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효율성을 높이면서 '기본사회'나 '성과 공유모델' 같은 개념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다. 아직 낯선 개념이고, 관련 입법도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 과실을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은 거세질 것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은 이 거대한 담론의 예고편이다.
과실을 나누려면 결국 성장해야 한다. 성장 없는 분배는 허무주의를 낳는다. 매년 조 단위 영업이익을 꾸준히 쌓아올려 10%를 직원들에게 목돈으로 나눠줄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국내에서 영업이익 1조클럽은 연간 30여개에 불과하다. 그중에 호황과 불황에 따라 실적이 오락가락하는 기업이 태반이다. 더구나 많이 벌어도 직원 수가 많으면 1인당 몫은 쪼그라든다. 수억원대 성과급을 쥐여줄 수 있는 기업은 현실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정도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에 전 국민이 흥분했지만 대부분 직장인에게 신기루일 뿐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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