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부장님처럼 될까 봐 무서워요"… 2030이 '직장' 탈출하는 진짜 이유 [김부장 vs 이사원]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30 12:00

수정 2026.05.30 14:09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이직할 곳은 정해졌고? 연봉 더 준대?" 사직서를 내민 마케팅팀 이 사원(29)에게 영업팀 김 부장(49)이 안타까운 마음에 묻는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번듯한 대기업. 하지만 돌아온 이 사원의 대답은 김 부장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아니요, 당분간 좀 쉬려고요. 그냥… 여기서 계속 버티다간 부장님처럼 될까 봐 무서워서요."

이 한마디는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다.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친 기성세대의 몰락과, 롤모델이 사라진 일터에서 각자도생을 택한 청년세대의 비애가 교차하는 대한민국 오피스의 현주소다.

◇ "내 인생은 회사의 것"… 토사구팽 당한 김 부장의 20년

김 부장의 지난 20년은 철저한 '회사 중심'이었다.

일곱 살 막내아들과 주말에 축구공 한번 제대로 차주지 못한 채 주말 특근과 거래처 접대를 돌았다.

그렇게 뼈를 갈아 넣은 덕분에 아이의 비싼 어학원(영어유치원) 학비와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며 한 가정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청구서는 가혹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이 가장 오래 근무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49.4세에 불과하다.

임원 승진에서 누락된 김 부장 앞에도 서서히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충성을 다하면 정년과 노후를 보장해 주던 '평생직장'의 신화는 끝났다. 남은 것은 건강을 잃고 벼랑 끝에 선 중년의 씁쓸한 뒷모습뿐이다.

◇ "열심히 다니면 바보"… 이 사원이 사표를 던진 진짜 이유

연합뉴스
연합뉴스

이 사원은 이기적이거나 끈기가 없어서 퇴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가장 냉정하게 계산한 결과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30%를 웃돈다. 그들이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 강도'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 부재'다.

이 사원의 눈에 비친 김 부장의 삶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오답 노트'다. 가족과의 일상마저 희생하며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했지만, 결국 50살이 되기도 전에 짐을 싸야 하는 선배의 처절한 말로. 이 사원은 깨달았다.

"이 배(회사)는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이 사원에게 퇴사는 무책임한 도피가 아니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챙겨 뛰어내리는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 멘토가 사라진 일터…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나

우리는 종종 이 사원을 향해 "요즘 애들은 배가 불렀다"고 혀를 차고, 김 부장을 향해 "시대 바뀐 줄 모르는 꼰대"라며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이 오피스 잔혹사에서 돌을 맞아야 할 대상은 이들 중 누구도 아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지만 토사구팽 당하는 4050세대. 그리고 그 선배들의 몰락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회사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를 거둬버린 2030세대.

두 세대 모두 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적 피해자일 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묵묵히 출근 카드를 찍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사원증을 반납한다.


정답이 사라진 미친 일터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의 고단한 어깨에 깊은 연대와 위로를 보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