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국내 고정사업장 없는 빅테크… 法 도움 없이 싸우는 과세당국

최은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31 18:50

수정 2026.05.31 18:49

구글·넷플릭스 등 법인세 불복
한국 법원도 빅테크 손 들어줘
국세청, 수천억원대 사건 연패
대응 역량·제도적 문제 잇단 지적
"기존 과세기준으로 승소 어려워
플랫폼 산업 현실 담은 법 필요"

국내 고정사업장 없는 빅테크… 法 도움 없이 싸우는 과세당국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국내 세무당국을 상대로 한 수천억원대 조세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면서 이를 대리한 국내 대형로펌들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반면 세무당국은 주요 사건마다 연패를 거듭하고 있어 국제조세 분야 대응 역량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법조계와 세무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 28일 구글코리아를 상대로 한 1540억원대 법인세 취소소송 항소심 패소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 7일 1심과 마찬가지로 구글코리아 측 손을 들어주며 법인세 등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국내 과세당국과의 조세소송에서 연이어 승소하고 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762억원대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겼고, 메타 역시 2300억원대 법인세 소송에서 과세당국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기업용 서버·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도 3100억원대 법인세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들 사건은 해외 법인에 지급된 대가를 사업소득으로 볼 것인지, 국내에 과세 가능한 고정사업장(PE·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물리적 장소)이 존재하는지가 대부분 핵심 쟁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협약은 협약국의 기업이 협약국 내 고정사업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업소득을 과세할 수 없도록 한다.

구글 사건에서는 국내 광고 수익이 싱가포르 법인으로 보낸 사업소득인지, 과세가 되는 사용료 소득인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사업소득에 해당한다고 보고 국내 고정사업장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과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넷플릭스 사건 역시 네덜란드 법인에 지급한 수수료를 사업소득으로 보면서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세무변호사회 이사를 역임한 윤범준 법무법인 예화 변호사는 구글 사건에 대해 "해당 소득이 사업소득인 것은 분명해 보이므로 해외 사업자의 국내 사업장이 없는 한 조세조약상 한국은 과세권이 없다"며 "대법원에서 판례가 바뀔 여지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빅테크들의 과세소송을 승리로 이끈 건 국내 대형로펌들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구글코리아, 넷플릭스코리아, 메타 사건을 맡아 수백억~수천억원대 조세사건 승소를 이끌어 왔다. 법무법인 세종은 오라클의 3100억원대 법인세 취소소송을 대리해 최종 승소를 받아냈다. 이 밖에도 율촌은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의 과세처분 취소 사건에서 성과를 냈다.

국제조세 사건이 대형로펌의 핵심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전문인력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빅테크를 대리한 대형로펌들은 대법원 조세조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와 국세청·조세심판원 출신 전문가, 국제조세조약에 정통한 외국변호사, 회계사·세무사 등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수천억원대 분쟁이 늘어나면서 이들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과세당국 역시 오라클 사건에서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조세쟁송 분야 강소로펌 등을 선임해 대응했지만, 현재까지는 기존 법리를 뒤집고 승소한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버와 공장 등 물리적 거점을 중심으로 설계된 현행 고정사업장 기준이 글로벌 플랫폼 사업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전성민 가천대 경영대 교수는 2023년 발표한 논문에서 "고정사업장 기준 과세 방식은 제조업 중심의 과거 체계"라며 "IT 산업이 핵심이 된 오늘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신언 세무사도 관련 논문에서 "물리적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시장소재지 국가에 초과이익 또는 잔여이익에 대한 과세권을 배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제안했다.


국세청은 개별 과세 사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국세기본법은 비밀유지 조항에서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징수 등을 위해 얻은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세청은 하급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급심 판단을 추가로 받아보기로 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