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책을 읽읍시다] 김창룡의 재조명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특무기관장이 왜 군인들에게 암살당했나?
개인 원한 관계 넘어 구조적 요인 추적
건국 공로자를 '현대사의 악인'으로 몰아
재판기록 회고록 증언 등으로 역사 복원

이영훈 외 지음/김창룡의 재조명/이승만북스
이영훈 외 지음/김창룡의 재조명/이승만북스

[파이낸셜뉴스] 1950년대 대한민국 육군 특무부대장으로 일한 김창룡 소장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의 건립 과정이 공산 세력과 투쟁하고 그들을 소멸시키는 타공(打共)의 과정이라고 볼 때, 타공 전선의 선두에 서서 활동한 사람이 김창룡이다.

함남 영흥에서 1916년 태어난 그는 만주의 일본군 헌병대에서 공산주의자 수사의 실무를 익혔고 1946년 월남해 육군에 투신했다. 해방 후 남한에서 공산 세력은 대규모 폭동과 게릴라 활동을 벌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공산 세력은 국회와 사법부 내 간첩 침투, 군대 반란, 무장유격대 파견으로 신생 국가의 전복을 꾀했다.

김창룡 육군특무부대장(1951~56년)/위키피디아
김창룡 육군특무부대장(1951~56년)/위키피디아

이때 김창룡 소장은 미군정의 CIC를 모델로 만든 한국군 정보수사기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군 안팎의 공산주의 세력 색출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국가 수호와 안보 역량 구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신이었다. 1951년 육군 특무부대장에 취임한 그는 1956년 1월 30일 출근길에 암살당할 때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정부 최고의 정보기관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대공 수사는 집요하고 철저했다. 혐의만으로 서둘러 체포하지 않고 확실한 증거가 포착될 때까지 몇 달이고 잠복과 미행을 거듭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유족과 부하들의 기억에 의하면 김창룡은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이었다. 5년 가까이 정보기관장직에 있었지만 부정하게 남긴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고 했다.

부하들은 김창룡에 대해 "신상필벌에 매우 엄격했지만 사적으로는 자애로운 상관이었다"고 증언했다. 김창룡은 장교와 사병의 식당 구분을 없앴으며, 일상 대화에선 하급자에게도 경어를 썼다. 일이 많으면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군복 차림으로 잠자곤 했다.

이 책은 김창룡 암살 사건이 개인 원한 사건이 아니라 큰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특무부대의 군 비리 수사와 군벌 간 갈등, 작전계통과 정보계통의 충돌, 이승만의 군 통제체제와 군 파벌의 대립이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책은 김창룡 암살사건 재판기록, 군 자료, 언론, 회고록과 증언 등을 종합분석해 사건의 실상을 복원했다. 김창룡이라는 인물이 사후 대한민국 현대사의 '악인'으로 몰린 과정과 이유도 추적했다.

책은 그가 몸담았던 이승만 시대의 정치에 대한 재해석도 시도한다. 김창룡을 '독재정권의 비밀경찰', '고문과 조작의 상징', '김구 암살의 배후'로 기억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를 반박한다. 저자들은 "'김창룡 소장 악마화'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역사의 공로자를 악인으로 만드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고 강조한다.

마지막 제3부에는 김창룡 소장의 두 딸이 쓴 글이 실려 있다. 김 소장이 암살된 뒤 그의 가족은 브라질로 이민 가 힘들게 살았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진짜 모습과 그리움이 담담하면서도 절절한 필치로 기록돼 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김창룡 #특무부대장 #핵심 인물 #현대사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