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지금이 금융 혁신의 골든타임
수천개의 변수와 비정형 데이터를
AI가 동시 분석, 생산적 금융 가능
미래 성장성 높은 기업에 자본공급
비정규직 등에도 포용적 금융 길터
금융사 벽 허물고 AI 내재화하고
정부 규제 풀어 '걸림돌' 없애야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행은 건전성을 중시하게 되었고, 자본비율과 리스크 관리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분명 값진 성취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외면해왔다. 그렇게 건전해진 금융이 과연 우리 경제를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으로 만들었을까.
산업화 시기의 금융은 국가 성장전략의 도구였다. 국민의 저축을 모아 제조업과 수출산업에 공급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IMF 이후에는 방향이 달라졌다. 금융은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기 시작했다. 위기를 겪은 뒤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금융이 점점 더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자금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혁신기업보다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과 가계대출로 몰렸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표준화가 쉽고, 손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결과는 달랐다. 혁신기업과 스타트업에는 충분한 자금이 흐르지 못했고, 한국 경제는 부동산 중심의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금융은 더 안전해졌지만 더 생산적이지는 못했다. 동시에 금융의 문턱 밖에 놓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청년 창업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신용평가 체계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금융은 건전해졌지만 충분히 포용적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금융 대전환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1990년대까지의 산업화 금융 시대, 외환위기 이후의 안정화 금융 시대를 거쳐 이제 인공지능(AI) 기반 혁신금융의 시대로 금융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금융은 결국 정보를 판단하는 산업이다. 돈을 빌려줄지, 투자할지,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는 일이 모두 정보 분석의 문제다. 과거에는 사람이 제한된 데이터만 보고 판단했다. 이제는 AI가 수천 개 변수와 비정형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한다. 거래패턴과 현금흐름, 공급망 정보, 소비패턴까지 종합적으로 읽어낸다.
이 변화는 생산적 금융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 금융은 과거의 재무제표와 담보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과거 데이터가 부족하다. AI는 스타트업의 고객 유지율, 온라인 거래 흐름, 공급망 안정성 같은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가능성을 더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다. 자본이 과거 실적만 좋은 기업이 아니라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AI는 포용적 금융도 가능하게 만든다. 정규직 급여 이력이 부족하더라도 현금흐름의 안정성을 분석할 수 있고, 금융거래 기록이 짧더라도 소비 패턴과 생활 데이터를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 과거 금융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포용성과 생산성은 원래 충돌하는 목표처럼 여겨졌지만 AI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을 더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금융은 동시에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회가 있다고 미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 스스로 변해야 한다. AI 전담부서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영업과 리스크, 마케팅과 IT 사이의 벽을 허물고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 실패를 최소화하는 문화만으로는 안 된다. 작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며 학습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점포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AI를 얼마나 조직 깊숙이 내재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의 역할 역시 너무도 중요하다. 지금의 금융규제는 여전히 사전 허가와 세부 규정 중심이다. 하지만 AI 시대의 혁신은 실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모든 것을 미리 허락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보호와 책임성 같은 큰 원칙만 제시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샌드박스도 단순한 예외 허용이 아니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학습 체계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조건은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성과 실행력이다. AI 시대를 단순한 기술 변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금융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기회로 만들 것인가. 답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