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침묵의 장기' 간 경고음, 간섬유화 스캔으로 잡는다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술 안 마시는데?..'정상 체중'도 못 피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
건강검진 단골손님 '지방간', 방치하면 간경변증 직행 "위험"
B·C형 간염보다 많은 '섬유화 지방간' 치료 후 관찰 필수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 "식단과 근육 관리가 생명줄"

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간 섬유화 검사를 하고 있는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 온병원 제공
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간 섬유화 검사를 하고 있는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 온병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직장인 김모씨(45)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년째 '가벼운 지방간이 있으니 체중을 조절하라'는 권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번 검사에서 간 기능 수치가 상승해 추가로 시행한 간섬유화 스캔 검사에서 초기 간섬유화가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지금 당장 생활 습관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수년 내에 간이 딱딱하게 굳어 기능을 잃는 간경변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꼽히는 지방간은 대중에게 매우 흔한 질환으로 인식돼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방간 진단을 받고도 '살을 조금 빼면 되겠지'라며 방치하기 일쑤다. 질병관리청 및 대한간학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은 25∼30%에 달한다. 성인 3∼4명 중 1명은 술을 마시지 않거나 아주 적게 마시는데도 간에 기름이 끼어 있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 식습관의 서구화와 배만 나오는 복부 비만 인구의 증가로 환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으며, 국내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의 약 30%는 겉보기에 뚱뚱하지 않고 몸무게가 정상인 '마른 지방간(비비만성 지방간)' 환자라는 점에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부산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전 고신대의대 간내과 교수)는 "단순 지방간을 방치할 경우 간세포가 파괴되는 간염을 거쳐 간이 돌처럼 딱딱해지는 '간섬유화'로 이행될 수 있으며, 이 단계를 넘어서면 돌이키기 힘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17일 경고한다.

실제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의 10∼20%는 간세포 파괴와 염증이 동반되는 '지방간염'으로 진행되고, 이들 중 다시 20% 안팎은 결국 간경변증이나 간암 같은 중증 질환으로 악화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동안 간이 얼마나 굳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긴 바늘을 갈비뼈 사이에 찔러 넣어 간 조직을 채취하는 아프고 위험 부담이 큰 조직검사를 시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통증 없이 5분 내외로 간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간섬유화 스캔(피브로스캔)' 검사가 널리 활용되면서 지방간 관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간섬유화 스캔은 초음파 진동을 이용해 간의 탄력성과 지방의 양을 동시에 측정하는 검사다. 검사 결과는 크게 두 가지 수치로 표현되는데, 간에 기름이 낀 정도를 나타내는 '지방증 등급(CAP)'과 간이 딱딱해진 정도를 보여주는 '간 탄성도 수치(kPa)'가 그것이다. 통상적으로 탄성도 수치가 7.5킬로파스칼(kPa)을 넘어 F2 단계에 진입하면 간에 중등도의 흉터가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며, 이때부터는 단순한 비만이 아닌 '위험한 질환'으로 인식하고 집중적인 관리에 돌입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이처럼 중등도(F2) 이상의 간섬유화를 동반한 지방간 인구는 약 172만 명에 달한다. 이는 국내 만성 B형 및 C형 간염 환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로, 의료 현장에서 섬유화 스캔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간섬유화 스캔은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 환자의 장기적인 추적 관찰에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검사다.

한병훈 교수는 "최근 개발된 B·C형 간염 치료제들은 100%에 가까운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및 완치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약물로 바이러스가 완벽히 조절되더라도 기존에 이미 진행되어 있던 간섬유화로 인한 간경변 및 간암 진행 위험은 여전히 몸에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학계에서는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경우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는 동안 연 1회 정기적인 간섬유화 스캔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또한 만성 C형 간염 환자는 치료를 통해 완치되는 시점에 우선 검사를 시행하고, 이 중 진행성 섬유화(F3 단계 이상)를 동반했던 고위험군에 한해서는 완치 이후에도 최소 연 1회 이상 섬유화 스캔 검사를 지속하며 간 상태를 추적해야 한다.

한병훈 교수는 "지방간으로 인한 간섬유화 역시 초기 단계까지는 원인을 정확히 치료하고 생활 습관을 개선하면 다시 건강한 정상 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간섬유화 스캔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철저하고 과학적인 생활 수칙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식단이다.

흔히 지방간이라고 하면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의학적으로 더 치명적인 주범은 과도하게 섭취하는 '정제 탄수화물'과 '당류'다. 음료수나 가공식품에 다량 함유된 액상과당은 장을 거쳐 간으로 직행한 뒤 곧바로 중성지방으로 변환돼 간세포를 질식시킨다.

따라서 믹스커피, 탄산음료, 과일주스 등 당이 첨가된 음료를 즉시 끊고, 흰쌀밥이나 빵 같은 정제 탄수화물의 양을 줄이는 대신 두부, 생선, 기름기 없는 살코기 등 질 좋은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전환해야 한다.

운동 방식도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체중을 줄이기 위해 무작정 달리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허벅지를 비롯한 하체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근육은 우리 몸에서 포도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거대한 소각장과 같다. 근력 운동을 통해 하체 근육을 탄탄하게 다져놓으면 혈액 속을 떠돌던 당분들이 간에 쌓이기 전에 근육에서 에너지원으로 먼저 소모된다. 주 3회 이상의 스쿼트나 런지 같은 근력 운동과 함께, 주 150분 이상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간에 낀 기름을 쥐어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의학계가 제시하는 가장 확실한 치료 목표는 '현재 체중의 7∼10% 감량'이다.

임상 연구에 따르면 몸무게를 7%만 줄여도 간세포 내의 지방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며, 10% 이상 감량에 성공할 경우 이미 진행 중이던 간섬유화 조직까지 다시 부드러워지며 호전되는 역전 현상이 확인됐다. 다만 한 달에 5kg 이상 급격하게 살을 빼는 무리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간 부전을 유발하거나 지방간을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한 달에 2∼3kg씩 완만하게 감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간은 세포가 파괴되고 굳어가는 순간까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침묵의 장기'다.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는 "국내 유병률이 보여주듯 지방간은 이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문제가 됐지만 정기적인 간섬유화 검사를 통해 현재 내 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며 "이미 섬유화가 시작됐다는 수치를 받았다 하더라도 낙담하기보다는 액상과당 차단, 하체 근육 강화, 단계적 체중 감량이라는 명확한 수칙을 실천한다면 간은 반드시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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