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테헤란로] 순항 중인 ‘K조선’ 앞의 암초

김동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김동호 산업부 차장
김동호 산업부 차장

1970년대 세계 선박 건조량을 양분하며 바다를 호령하던 영국 조선업의 몰락 원인은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었다. 수많은 하청과 직종별로 쪼개진 노조가 사사건건 파업을 무기 삼아 도크를 마비시켰고, 납기를 놓친 영국 조선소들은 신뢰를 잃으며 아시아에 패권을 넘겼다. 퀀텀점프를 앞둔 한화오션에 덮친 노동 리스크를 보며 반세기 전 영국의 뼈아픈 역사가 기시감처럼 스치는 이유다.

옛 대우조선해양 시절의 만성 적자를 끊어낸 한화오션은 최근 K-해양방산의 최전선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전격 인수하며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선봉에 섰고, 수백조원 규모의 미 해군 함정 유지·정비·보수(MRO) 및 신조 건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단숨에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수주전의 승기를 굳히며 명실상부한 종합 해양방산의 절대 강자로 비상할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순항하던 뱃머리 앞에 '무한 사용자성'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등장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내 급식 및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웰리브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원청인 한화오션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전격 인정했다. 선박 건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구내식당 등 간접지원 업무를 맡은 하청 협력사까지 원청이 직접교섭에 나서라는 폭넓은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다. 교섭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면 사내 수많은 하청노조 중 단 한 곳만 쟁의에 돌입해도 원청의 조업이 마비되는 연쇄 리스크에 노출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2년 하청 노조의 51일 도크 점거 파업으로 무려 8000억원대 손실을 냈던 뼈아픈 상흔이 뚜렷하다. 방위산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국가안보와 직결된 '적기 인도'가 생명이다. 급식 하청업체의 파업으로 수조원대 이지스함 건조가 멈추고 미 해군 함정 MRO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을 용납할 동맹국은 없다. 무리한 파업 리스크가 마스가 프로젝트마저 좌초시킬 수 있다.

하청 근로조건 개선은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도급 계약의 법적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원청에 무분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모처럼 훈풍을 탄 K-방산이다. 불명확한 잣대로 촉발된 소모적인 분쟁이 국가 핵심 안보자산의 도약에 족쇄가 되어선 안 된다. 영국 조선업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현장 혼란을 막을 현실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hoya0222@fnnews.com


기자 정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