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강남視角] 소버린 AI가 필요한 진짜 이유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구순 IT 대기자
이구순 IT 대기자

소버린 인공지능(AI)이 도대체 뭐야? 챗GPT나 클로드 같은 모델을 국산으로 만든다는 거야? 수조원씩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질 떨어지는 AI를 만드는 게 효율성이 있는 거야? 지난 2년간 많은 사람들이 물었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문제다. AI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도, AI기업 최고경영자(CEO)도 뾰족한 정답을 내놓지 못해 지켜보는 사람까지 답답했었다.

미국 정부가 돌연 앤스로픽의 최상위 AI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에 대해 외국인의 접근을 통제했다.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막연하게나마 예상 못했던 일도 아니다. 이미 국가안보를 이유로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틀어막은 미국 정부가 강력한 전쟁무기로 발전한 AI를 국가안보 단계에서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도 전 세계는 화들짝 놀랐다. 앤스로픽의 AI모델을 기반으로 국방·의료·산업·연구의 AI 전환은 물론 사이버보안까지 앤스로픽 AI 위에서 준비하고 있던 나라들은 하얗게 질렸다. 앤스로픽 AI를 활용해 새로운 에이전트를 개발하던 개발자들은 그저 손놓고 미국의 정책변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의 AI 접근통제로 전 세계가 정신 못 차리던 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우리는 우리만의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해야 한다"며 "정보총국(DGSI)의 빅데이터 분석업체를 팔란티어에서 프랑스 업체 샵스비전으로 대체하고, 공무원들에게는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이 개발한 AI 비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우리는 자체 AI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가 걸린 문제이며, 앤스로픽 모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일부 파트너들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아무도 주지 못한 답을 프랑스 총리의 선언에서 찾았다.

소버린 AI는 옆집 파트너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고, 협상과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우리의 생존권이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첨단 AI를 당장 만들지 못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편히 쓸 수 있는 AI모델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협상의 지렛대다. 그래서 소버린 AI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답을 얻었으니 이제 소버린 AI의 필요성·효율성 논쟁을 끝냈으면 한다. 소버린 AI의 가치가 입증됐으니, 앞으로는 점차 강력해질 AI 패권국들의 통제에서 한국의 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더 촘촘하게 짜면 좋은지 논의했으면 한다.

프런티어 AI모델에 대한 장기투자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지원할지, 한국의 AI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는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같은 전략적 논의에 정부와 전문가, 기업들이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기업들은 AI 공급망에 대한 관리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AI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한국 기업들은 '의심받지 않을 준비'가 곧 협상력이다. 보안, 지분, 공급망의 투명성을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든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갖춰야 한다.

언론도 훼방꾼이 되면 안 된다. 미국의 한 언론이 앤스로픽 접근제한 원인으로 '중국과 연결된 한국 통신사의 보안 문제'라는 익명의 소식통 인용 보도를 했다. 정작 미국에서는 큰 반향이 없던 기사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한국 AI가 위험하다거나 한국 통신회사가 중국 기술에 종속되고 있다거나 확대해석까지 나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실체는 없다. 한국에 중국과 연결된 통신회사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때보다 투명성이 중요한 민감한 시기에 기업이 쌓아놓은 투명성을 언론이 근거 없이 훼손하는 데 앞장서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첨단 AI모델을 전략자산으로 끌어들여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국익에 충실한 냉정한 판단이 절실하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기자 정보

#AI정책 #AI기업 #르코르뉘 총리 #자체 AI 도구 #앤스로픽 모델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