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이란 전쟁이 소환한 북한 핵
미국·이스라엘이 소환한 1994년
미국 본토 접근한 北 핵미사일
방치된 핵시설로 '핵강국' 된 北
北 핵미사일 우리 목 찌르는 비수
북·중·러 밀착 속 격상된 北 위상
핵우산 넘어선 플랜 B·C 절실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에 체류하던 손자·손녀들을 다급하게 귀국시켰다.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과 미군 가족들의 귀국계획도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본도 한국 체류 자국민 소개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 돌았다. 1994년 봄 상황이었다.
북한은 핵개발을 들키자, 19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벼랑끝 전술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핵포기 압박에 북한은 무력대응 카드를 흔들며 긴장 수위를 높여갔다. 판문점 남북한 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장 박영수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도 불바다가 된다"고 윽박지르던 것도 1994년 3월이었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영변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했다. 클린턴 정부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한국에 미군 1만명 증원 및 최첨단 무기 추가 배치 등을 추진하며 북한 도발에 대비했다. 북한이 서울 등 수도권을 때리면 최소 50만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클린턴 정부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벼랑끝 대치와 충돌 위기 속의 그해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김일성 주석과의 평양 회담은 클린턴 정부의 강경 입장을 급선회시켰다. 한국·미국·일본 등이 북한의 핵개발 포기 대가로 경수로를 지어주는 '제네바 합의'가 타결됐다. 그러나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시도 등의 마찰 속에 2002년 조지 부시 정부는 핵시설 타격을 다시 계획했다. 9·11 테러로 공격은 미뤄졌고, 그 뒤 6자 회담 등 협상·결렬의 반복 속에서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 끝에 '사실상의 핵국가'가 됐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카터의 평양 방문과 클린턴의 대북 선제타격 계획 등 1994년 상황. 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란전쟁은 그 사건을 소환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핵개발 저지를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과 전쟁 명분으로 강조했다.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개전 직후인 지난 3월 5일 "북한 핵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없어 현재와 같은 상황(북한 핵보유)이 됐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그는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이곳(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북한은 4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길라드 코헨 주일본 이스라엘대사도 며칠 뒤인 지난 3월 11일 더 직설적으로 이란 공격의 정당성을 북핵 사례에서 찾았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이 공격하지 않은 결과, 핵무장한 북한이 각국을 미사일로 위협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전쟁 이후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북한 핵개발 대응을 실패 사례로 언급했다. 카터의 북한 방문은 김일성의 책략에 말려든 실책이었다는 주장도 더 커졌다.
북한은 그사이 미국에 핵군축 협상을 제의할 정도로 핵역량을 높이면서 전략적 입지를 다져왔다.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던 중국도 지난 8·9일 평양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7년 만의 북한 방문은 북중러 '북방 3국' 지정학적 밀착과 '사실상 핵국가' 지위를 굳힌 북한의 격상된 전략적 위상을 보여줬다.
지금은 30년 전 북핵 위기를 기억하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의 커진 핵 및 미사일 공격 능력도 우리 관심사에서 밀려나 있다. 북한은 괌과 하와이를 넘어 미국 본토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에 닿게 되면 미국의 대북 억지능력은 손발이 묶이게 된다. ICBM 등 미사일과 결합된 북한의 핵역량은 우리 목을 겨냥한 비수다.
'미국의 핵우산'도 북한의 강화되는 핵과 미사일 역량 속에 위축되고 있다. 핵무장에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핵 고도화의 목표를 이뤄나가며 '적대적 두 국가론' 속에 역내 영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거래적 동맹 관계의 색채가 짙어지고 꿈틀거리는 '세력권 질서'의 부상 속에서 미국의 핵우산 보장을 넘어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할 우리의 플랜B, 플랜C가 절실하다. 커가는 북한의 핵역량 앞에서 우리의 번영과 안정,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가 한순간의 신기루가 되지 않도록 비상한 결의 속에서 다양한 대응책들이 준비돼야 한다. 1994년 북한 핵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june@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