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곳… 코리아둘레길 따라 전남을 걷다 [Weekend 레저]
우리나라 외곽선 따라 촘촘히 엮어
4500㎞ 초장거리 도보여행길 완성
남파랑길·서해랑길 만나는 땅끝마을에서
코리아둘레길 위로 해남·강진·목포 걷기
【해남·강진·목포(전남)=정순민 기자】 지난 2024년 9월 완전 개통한 코리아둘레길은 대한민국의 외곽선을 촘촘히 엮어 완성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초장거리 도보 여행길이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시작된 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과 전남 해남 땅끝마을,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를 거쳐 다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장장 4500㎞를 내달린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800㎞)의 약 5.6배에 달하는 이 길에는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 DMZ평화의길 등 4개의 큰 길과 총 284개의 트레일 코스가 연결돼 있다. 하루 40㎞씩 쉬지 않고 걸어도 꼬박 4개월이 걸리는, 그야말로 엄청난 길이다. 지난주,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중심으로 남파랑길과 서해랑길 일부 구간을 직접 걸어봤다.
■땅끝,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이 만나다
땅끝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코리아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남파랑길의 종착점이자 서해랑길의 출발점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에서 시작해 남해안을 따라 1470㎞를 이어온 길이다. 반면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출발해 인천 강화까지 1800㎞를 북상한다. 한 길의 끝과 또 다른 길의 시작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땅끝'이다.
사자봉 아래, 땅끝탑으로 향하는 길은 잘 정비된 무장애 데크길로 이어진다. 걷는 내내 남해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두 눈을 시원하게 한다. 투명 바닥의 스카이워크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푸른 파도가 출렁이고, 해안선 너머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데크길 끝에서 만난 땅끝탑은 생각 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그 상징성 만큼은 압도적이다. 높이 9m의 탑 앞에 서면 남해와 서해가 맞닿은 풍경이 한눈에 펼쳐져서다. 탑 왼편으로는 남파랑길이 지나온 남해의 해안선이 끝없이 이어지고, 오른편으로는 서해랑길의 시작을 알리는 서해의 수평선이 길게 뻗어 있다.
땅끝마을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남파랑길 마지막 코스의 주요 명소인 미황사를 만날 수 있다. 미황사는 달마산 기암괴석 아래 자리한 천년고찰로, 인도에서 불경과 불상을 싣고 온 배가 닿은 곳이라는 창건 설화가 전해진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달마산 능선을 따라 남해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시선을 압도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달마산 정상부 도솔봉 암벽에 자리한 도솔암도 들러볼 만하다. 절벽 끝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도솔암은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일출과 낙조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다산초당 가는 길과 백련사 오솔길
남파랑길 83코스의 중심은 강진 만덕산(해발 408m)이다. 산세가 우람하지는 않지만 이 산이 한국 인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이 산자락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어서다.
다산박물관 앞 주차장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면 초여름 녹음이 터널처럼 이어진다. 오르막길 끝에 모습을 드러낸 다산초당은 단청과 화려한 장식이 없어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걸작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공간이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강진으로 유배됐다. 그는 다산초당에서 10여년을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저술을 남겼다. 절망의 유배지가 학문의 황금기로 탈바꿈한 셈이다.
초당 마당에는 다산이 직접 만들었다는 약천(藥泉)과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 남아 있다. 샘물로 차를 끓이고 작은 연못에 잉어를 기르며 사색을 이어갔던 흔적들이다. 좁은 공간이지만 곳곳에 그의 삶과 철학이 스며 있다.
다산초당의 백미는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이다. 약 1.3㎞ 거리의 숲길은 야생 차나무와 동백나무, 소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산이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이 길을 따라 백련사를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백련사 주지 혜장선사와 다산은 신분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깊은 학문적 교류를 나눴다. 유배객 다산에게 혜장은 정신적 버팀목이자 벗이었다. 바람 소리만 들리는 오솔길을 걷다 보면 두 사람이 나눴을 대화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남파랑길이 단순한 트레킹 코스를 넘어 '인문학 여행길'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시아노 관광단지와 목포 근대화거리
땅끝을 지나 서해랑길을 따라 북상하면 해남 오시아노 관광단지에 닿는다. 광활한 해변과 캠핑장, 골프장, 호텔이 들어선 서남해안의 대표 휴양지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서해랑길 14코스에 있는 '해남126 호텔'이다. 세련된 외관 탓에 유명 호텔 체인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공공 숙박시설이다. 전 객실이 서해를 향한 오션뷰로 설계됐고, 인피니티풀에서는 바다와 수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해남126은 이 고장을 대표하는 인물인 고산 윤선도(1587~1671)의 고택 녹우당의 건축양식을 모티브로 지어져 건축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홑겹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뜰(중정)을 두어 한옥 특유의 우아함을 더했다.
서해랑길은 다시 목포로 이어진다. 16코스와 18코스 일대는 코리아둘레길 가운데서도 인문학적 매력이 돋보이는 구간이다.
우선 목포 삼학도공원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수로를 따라 조성된 산책길은 한적하고, 공원 곳곳에는 목포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배어난다.
인근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장소다.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주제를 담은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길 위의 여행이 자연스럽게 역사 여행으로 확장된다.
근대역사문화거리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진다. 붉은 벽돌 건물과 적산가옥, 옛 일본영사관이 골목마다 남아 있어,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묘한 착각에 빠져든다. 일제강점기 개항 도시 목포가 품어온 영광과 상처가 동시에 드러나는, 묵직한 공간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