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으로 결정된 투표지 인쇄…선거법상 '부정한 방법' 인정될까
진상규명위, 노태악 등 12명 수사의뢰 권고…합수본 수사의 시간
졸속으로 결정된 투표지 인쇄…선거법상 '부정한 방법' 인정될까
진상규명위, 노태악 등 12명 수사의뢰 권고…합수본 수사의 시간
(서울=연합뉴스) 박재현 이밝음 기자 =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선거 관리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본)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조현욱 진상규명위원장은 19일 브리핑에서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과 위철환 상임위원, 허철훈 전 사무총장, 강동완 사무차장, 윤재수 전 선거정책실장 등 총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표용지 인쇄 매수 축소 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졸속 결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서울 송파구 선관위는 회의록도 없이 서면 의결 방식으로 축소 인쇄를 결정했다. 투표용지 부족 상황에서 보고 체계가 마비됐고 주먹구구식 대응이 이뤄졌다.
합수본은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를 넘겨받는다.
합수본은 지난 11일부터 중앙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영장에 공직선거법 237조(선거의 자유방해죄)와 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금지) 위반 혐의를 적시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거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합수본은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일부 유권자의 투표가 지연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등 실질적 피해가 발생한 만큼, '선거의 자유 방해' 행위는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선관위의 졸속 의결을 공직선거법상 '부정한 방법'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 판례는 선거 관계자나 유권자에게 폭행 등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해 선거운동이나 투표를 막은 경우 선거의 자유를 방해했다고 인정해 왔다.
2011년 재보궐 선거 당시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으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의 투표소 검색 기능을 마비시킨 사건도 선거의 자유 방해라고 판단했다.
선관위가 투표 용지 부족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인쇄 축소를 의결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부정한 방법'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합수본은 선관위의 축소 인쇄 결정과 이후 늑장 대처를 '직무와 관련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볼 수 있는지도 따져볼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는 단순 업무상 미비나 태만일 경우 선거관여 금지 또는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이 밖에도 투표용지 추가 배송에서 발생한 문제점도 합수본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선거일 '전일'까지 선관위에 송부하고, 투표용지에 일련번호를 '인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가 투표 당일 부족한 용지를 추가 배분하고, 늦게 배분한 투표용지의 일련번호를 수기로 작성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공직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합수본은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의 투표 시간을 연장하고, 개표 개시 결정을 내리는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법 위반이 있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합수본은 이날 서울 강남구 소재 투표소의 투표관리관 등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20일에도 투표관리관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예정돼 있다.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당시 투표소 상황을 재구성한 뒤 선관위 관계자 등 윗선에 대한 조사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합수본 관계자는 "실제 투표용지 축소 보고가 이뤄진 과정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며 "투표 관리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선거 당일 상황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brigh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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