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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지 않고 원유 걸러낸다' 저비용 친환경 분리막 기술 개발

연지안 기자
파이낸셜뉴스
울산 앞바다에 도착한 원유운반선 모습. 연합뉴스
울산 앞바다에 도착한 원유운반선 모습.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국내 연구진이 상온에서 원유를 걸러내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했다.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고 운영비도 절감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 막만으로 상온에서 정밀하게 걸러 내는 데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과기정통부 지원 사업으로 수행한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25일 자정(런던 현지시간 6월24일 16시)에 게재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전 세계 정유 공장은 원유를 끓였다가 식히는 '증류' 방식에 의존하며, 소비하는 에너지는 연간 1100TWh(테라와트시)에 달한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역시 국가 전체 배출량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계는 원유를 끓이지 않고 분리막으로 걸러내기 위한 연구에 주목해 왔다.

연구팀은 분리막에 아무런 코팅을 하지 않은 값싼 다공성 고분자(PAN) 막에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파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원유 속의 무거운 기름 성분들이 분리막 내부의 미세한 구멍에 스스로 들러붙으며,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크기인 2나노미터(nm) 이하의 정교한 미세 통로를 자발적으로 형성했다. 복합 혼합물인 원유가 분리막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맞춤형 '체'를 완성한 것이다.

이 체에 있는 통로를 통해 가벼운 나프타, 휘발유, 등유 성분만 빠르게 분리됐고 무거운 찌꺼기는 사실상 완전히 걸러졌다. 통상 분리막 표면에 기름 성분이 들러붙는 현상은 성능을 망치는 '오염(파울링)'으로 여겨져 왔지만, 연구팀은 이를 역으로 활용해 분리 통로를 만드는 도구로 전환시켰다. 이 방식은 기존에 보고된 최고 수준의 원유 분리막 대비 23배나 빠른 분리 속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8일간 원유 분리를 지속해도 성능 저하가 없는 뛰어난 안정성을 입증했다는 설명이다.

이 기술의 가장 큰 산업적 매력은 막대한 설비 교체 비용 없이 기존 정유 공장의 배관 시스템에 필터 모듈을 추가하는 형태로 즉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원유를 이 분리막에 통과시켜 나프타, 휘발유 등을 먼저 분리하고 남은 성분만 기존 증류탑에서 증류할 경우, 처음부터 증류하는 경우보다 에너지는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를 감축할 수 있으며 운영비 또한 36% 절감된다.

이를 국내 정유·석유화학 전반에 확대 적용하면 연간 약 1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으며, 이는 승용차 400만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탄소량과 대등한 수준이다. 또 원유 분리에 머무르지 않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정제, 배터리 용매 회수, 의약품 정제 등 다양한 정밀 화학 공정으로 확장이 가능해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분리 공정을 독자적인 국산 '분자 정유' 플랫폼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KAIST 고동연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리막이 혼합물과 만나 스스로 최적의 분리 통로를 빚어낸다는 새로운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낸 성과"라며, "실제 원유를 공급해 준 HD현대오일뱅크와 긴밀하게 협력한 덕분에 실험실을 넘어 산업 현실에 맞닿은 수준까지 검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KAIST 이재우 교수는 "향후 국내 정유·석유화학 공정 곳곳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대면적 모듈화 기술과 장기 운전 기술을 완성해 100년간 증류가 지배해 온 정유 산업을 분리막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jiany@fnnews.com 연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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