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B형간염 보유자, 간수치 정상에도 간암 위험 8배"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대한간학회, 새로운 진료 가이드라인 제시 주목
"몸속 바이러스 양이 일정 수준 이상 즉시 치료"
온병원, "HBV DNA 낮아도 간섬유화 스캔 필요"

[파이낸셜뉴스] 대한간학회가 최근 '2026 만성 B형간염 진료 가이드라인'을 전격 개정하면서 국내 100만 명에 달하는 B형간염 보유자들의 치료 패러다임이 통째로 바뀌고 있다.

핵심은 간수치(ALT)가 정상이더라도 몸속 바이러스 양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즉시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간수치가 정상이니 약을 먹지 말고 지켜보자'는 진단을 받고 안심했던 수많은 보유자들이 이번 개정으로 '적극적 치료 대상'으로 전환됐다.

부산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와 울주병원 간내과 김익모 과장의 도움말로 바뀐 지침과 현명한 대응법을 알아본다.

■ 간수치 정상인데 간암 위험 최고? '중등도 바이러스혈증'의 경고

과거 B형간염 치료는 혈액 검사상 간세포 파괴 정도를 나타내는 '간수치(ALT)'가 정상 상한치의 2배 이상 치솟거나 간이 딱딱해지는 섬유화가 대폭 진행돼야만 건강보험 급여를 받으며 약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간수치 중심의 낡은 틀을 깨고 '바이러스 양(HBV DNA)'을 기준으로 치료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과거에 치료 대상에서 제외돼 3~6개월마다 피검사만 하며 방치되던 이른바 '회색지대(불확정기 등)' 환자들을 구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울주병원 간내과 김익모 과장은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할 대상은 간수치는 정상인데 바이러스 수치가 어중간하게 높은 '중등도 바이러스혈증' 환자들"이라며 "의학적으로는 혈액 1㎖당 바이러스 양이 2000 IU/㎖ 이상이면서 1억 IU/㎖ 이하인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어 "최신 연구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아예 엄청나게 많을 때보다 오히려 이 중등도 상태일 때 우리 몸의 면역계가 바이러스와 어설프게 싸우면서 간세포를 가장 야금야금 파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 상태를 방치할 경우 간암 발생 위험이 정상인보다 최고 6∼8배까지 치솟기 때문에 즉각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경고했다.

■ 국내 대규모 임상 연구가 입증한 선제 치료의 효과

이처럼 파격적인 기준 완화의 배경에는 국내 연구진이 주도한 대규모 임상시험(ATTENTION 연구) 등 확고한 의학적 근거가 있다. 간수치가 정상이거나 경미하게만 높은 중등도 바이러스 환자들에게 항바이러스제를 선제적으로 투여했더니 그냥 지켜본 환자들에 비해 간암 발생 및 사망 위험이 무려 79%나 감소한 것이다. 실제로 국내 간암 환자의 64%가 과거의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하던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도 있다.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 온병원 제공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 온병원 제공

온병원 간내과 한병훈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국내 만성 B형간염 환자의 치료율이 기존 22% 수준에서 최대 50%까지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학회는 향후 15년간 국내에서 약 4만3000명의 간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을 덧붙였다.

그는 "가이드라인상 HBV-DNA 수치가 2000∼1억 단위 사이라면 ALT 수치와 관계없이 치료제를 투약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합리적이지만 이것이 곧바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기준에서 이들 환자가 급여를 받으려면 '간 섬유화 스캔' 검사에서 F2(중등도 섬유화) 이상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여 기준이 완벽히 연동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다 보면 간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섬유화 스캔을 통해 F2 이상이 확인되면 즉시 건강보험 급여를 받으며 치료를 시작하고, 만약 F2 미만으로 나온다면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염두에 두되 급여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다소 여유를 갖고 추적 관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B형간염 치료제는 1∼2개월 먹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 복용해야 하는 만큼, 섬유화 스캔 기준을 활용하면 학회 지침 충족과 급여 혜택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내 결과지는 안전할까? 병원에서 '이 검사' 확인해야

그렇다면 B형간염 보유자들은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병원을 찾아 본인의 바이러스 수치와 간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권한다.

단순히 간수치만 보는 일반 피검사로는 부족하다. 혈액 속 바이러스의 구체적인 카피 수를 숫자로 찍어내는 'HBV DNA 정량 검사(Real-time PCR)'와 바이러스의 활동성을 대변하는 'e항원(HBeAg) 검사', 그리고 간의 딱딱해진 굳기를 측정하는 '간 섬유화 스캔(FibroScan)'을 반드시 함께 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수치가 아주 낮게 나오는 환자들도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ALT가 정상이면서 HBV-DNA 수치가 15단위나 100단위 등으로 낮게 나오면 대개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방심하기 쉽지만, 이때도 신경 써서 섬유화 스캔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주병원 간내과 김익모 과장도 "바이러스 수치가 낮더라도 섬유화 스캔 결과 F4(간경변증) 이상이 나오면 이미 간경화가 진행된 상태이므로 반드시 치료제 투여를 시작해야 하며, 이 경우는 건강보험 급여도 즉시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김 과장은 "가까운 동네 내과나 종합병원 소화기내과를 방문해 '바뀐 지침에 따라 치료 대상인지 확인하고 싶으니 HBV DNA 정량 검사와 간 섬유화 스캔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병훈 교수 역시 "만약 ALT가 정상이고 HBV-DNA가 15∼150단위로 낮으면서 섬유화 스캔 결과가 F2 이상(F4 미만)으로 나온다면, 당장 치료제를 쓸 필요는 없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1∼2년 동안만이라도 6개월마다 섬유화 스캔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F4(간경화)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당부했다.

한 교수는 "과거에 '간수치가 깨끗하니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던 환자일수록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반드시 움직여야 하는 대상"이라며 "B형간염 약은 간암을 막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간암 예방약'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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