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가폭력 피해자 조카 재심 청구 배제' 형소법 헌법불합치
헌재 "과잉금지원칙 위반" 판결
[파이낸셜뉴스] 헌법재판소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가족 중 조카나 제수 등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 대한 재심 청구를 배제시키는 형사소송법이 헌법에 불합치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4일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유가족 3명이 형사소송법 424조에 대해 청구한 위헌소헌을 7대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다만 다음해 12월31일까지 국회에서 개정할 때까지 해당 법률은 계속 적용된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을 선언하되, 입법자의 의사를 존중해 형식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심판 대상 조항은 형소법 424조 4호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사망했거나 심신장애가 있는 경우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조카나 제수 등 직계가족이 아닌 가족들에게 재심 청구권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청구인은 총 4명으로 여순사건 피해자 가족 3명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연루됐던 고(故) 지학순 주교의 조카 조모씨가 포함됐다.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지난 1948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살고 있던 중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법적 절차 없이 살해됐다. 지 주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대통령긴급조치 위반과 내란 선동 등 혐의로 징역 15년과 자격 정지 15년을 받은 후 지난 1993년 3월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재심 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권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모두 기각했다. 유가족들은 헌법소원을 내면서 "직계가족을 제외한 친족은 재심을 청구해 망인과 친족 본인의 명예회복을 할 이해관계가 있음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며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재판청구권과 명예권을 침해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는 유가족들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헌법상 국민들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지는 국가가 의무를 위반한 채 판결을 통해 폭력을 행사한 불법행위까지 달성해야 하는 법적 안정성이 재심청구권자가 아닌 친족의 재판청구권 보장의 필요성을 희생시킬 정도로 중대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합리적 이유 없이, 재판청구권의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서 입법형성의 한계를 일탈하여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또 재심 청구권자들 직계가족으로만 한정한 입법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국가 폭력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고 진상 규명이 한참 뒤에 이뤄지는 점도 지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의 진상 규명의 경우, 피해자가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배우자나 직계친족, 형제자매마저 사망한 경우도 빈번하다는 취지다.
헌재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심판 대상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만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정당하고 적정한 재판이라는 법치주의의 또 다른 이념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여순사건 피해자의 제수(동생의 아내) 조모씨에 대한 재심 청구는 기각됐다. 헌법소원 제기 뒤 희생자 동생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만큼,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면서 재심청구권자의 범위를 확장할 것인지,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과거사정리법이나 관련 특별법에 규정을 둘 것인지 등도 입법자의 재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심판 대상 조항이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재심 청구권자를 가까운 친족으로 한정하고 있다"며 "이는 자의적 입법이라고 보기 어렵고, 검사에 의한 직권 재심청구도 가능하다"고 합헌 의견을 냈다.
[email protected] 정경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