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반도체로 분열된 사회
SK하이닉스에 다니는 지인은 요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성과급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가족 모임에서도 비슷하다. 말로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지만, 왠지 올해는 그가 무슨 선물을 해올지 기대하는 눈빛이 느껴진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하이닉스로 가주세요"라고 해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하다. "성과급 많이 받으셨겠네요." 그는 "이마에 성과급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기분"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부러웠다. 그 정도 성과급을 받는다면 그쯤의 시선은 감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이 장면이 지금 한국 사회가 반도체를 바라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체가 잘되자 모두가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노조는 성과급을, 주주는 배당을, 지방자치단체는 공장을 원한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이 가져올 세수 효과를 계산한다. 모두 이해할 만한 요구다. 성과를 낸 노동자는 보상받아야 하고, 투자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은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
문제는 순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반도체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반도체가 앞으로도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느냐다. 성장의 과실을 말하는 목소리는 넘치지만 성장의 조건을 묻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호남 반도체투자설'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역 발전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본질은 호남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말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입지가 어디냐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 논의는 위험해진다. 반도체는 정치적 배분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는 단순히 지역 안배로 결정할 수 없다. 전력과 용수, 인력, 협력업체, 물류망, 인허가 속도까지 맞물려야 한다. 어느 지역이 더 절실한지가 아니라 어느 곳이 반도체 경쟁력을 가장 높일 수 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물론 반도체의 성과는 사회와 나눠야 한다. 기업만 배불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성과를 배분하는 논의가 경쟁력을 쌓는 고민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 전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10년의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지 묻는 일이다. 열매를 나누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무가 계속 자라야 열매도 있다.
aber@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