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증명한 '통합 공항운영'… '규모의 경제'로 사상 최대실적
【 마드리드(스페인)=김동호 기자】 스페인 전역 46개 공항을 단일 체계로 운영하는 공항운영기업 AENA(아에나)가 35년간 통합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역과 규모에 상관없이 일원화된 기준으로 효율을 창출한 AENA의 선진 운영 모델은 신공항 건설과 거버넌스 개편을 앞둔 한국 공항 산업에 '통합 운영'이라는 묵직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AENA의 출발점은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이다. 스페인 정부는 기존 관료주의 체제로는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1991년 독립 공기업 AENA를 출범시켰다.2015년에는 국가 통제권(지분 51%)을 유지한 채 49%를 증시에 상장해 공공성과 상업성을 결합했다. 그 결과 AENA는 지난해 기준으로 총 4억7600만명(경영권을 가진 공항 그룹 기준 4억700만명)의 여객을 처리했으며, 매출 63억유로, 순이익 21억유로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성장의 핵심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돕는 공항관리계획(DORA)이다. AENA는 5년 단위로 정부와 사전에 협의해 전국 공항 투자액과 공항시설사용료 산정 기준을 확정한다. 해마다 예산 갈등을 겪을 필요 없이 적기에 투자가 이뤄진다.
실제로 안달루시아 말라가 공항은 사전에 계획된 '말라가 계획(Plan Malaga)' 투자를 통해 두 번째 활주로와 신규 터미널을 적기 확충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결과 여객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 현재 연간 2800만명 이상의 승객을 기록하며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팔마 공항에 이어 스페인 네트워크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핵심 공항으로 성장했다.
단일 네트워크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세밀한 영업·상업 전략도 눈에 띈다. AENA는 허브 공항과 지방 공항의 신규 취항을 무리하게 하나의 계약으로 묶는 대신, '노선·공항별 차등형 유치 인센티브(Route Incentive)' 체계에 집중해 항공사의 자발적 취항을 유도한다.
면세점 등 상업 시설 운영에 있어서도 입찰 사안별로 권역(Lot)을 유연하게 묶어서 처리한다. 2023년 진행된 대규모 글로벌 면세점 입찰의 경우, 스페인 전역 21개 입찰 대상 공항을 단일 묶음이 아닌 마드리드 단독, 안달루시아, 카나리아, 카탈루냐, 발레아레스, 북부 권역 등 총 6개의 롯으로 세분화하여 일괄 낙찰을 진행한 바 있다. 이처럼 사안 및 권역별 특성에 맞춰 유기적으로 롯을 구성해 상업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방 공항 활성화를 위한 마케팅 체계 역시 철저한 역할 분담과 조율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AENA는 지자체나 관광청 등이 주도하는 별도의 마케팅 재정 펀드에 직접 출자하지 않는 대신, 현지 관광 당국이 가장 효과적인 항공 및 관광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필요한 '데이터 및 정보'를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다만 세계 노선 개발 박람회(Routes)와 같은 항공 업계 공식 행사에서 공동 마케팅 협업을 진행하거나, 특정 타깃 노선의 비즈니스 케이스(수요 예측 등)를 제안하기 위해 관광 당국과 함께 항공사에 공동으로 접근하는 방식 등으로 긴밀한 협조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일 운영 체제에 대한 지역 사회의 반발은 철저한 논리와 데이터로 돌파했다. 바르셀로나 등 거점 공항의 독자 운영권을 요구하는 일부 자치정부에 맞서 AENA는 △국가 연대와 균형발전 △항공 안보 △상장사 주주가치 보호라는 3대 명분을 내세웠다. 공항을 분리하는 대신 자치주별 협의체를 신설해 운영 참여권을 보장하고, 통합 네트워크가 창출하는 경제 효과를 데이터로 증명하며 갈등을 관리했다.
통합 운영이 키운 강력한 구매 협상력(바잉 파워)은 국가 항공 산업의 체급 자체를 높였다. 외부 공급업체로부터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할 때 방대한 구매 물량을 바탕으로 조달 원가를 대폭 낮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본토에서 다진 원가 경쟁력과 통합 운영 노하우는 브라질 등 남미 대륙과 영국 런던 루턴 공항 등 해외 주요 공항 운영권 수주로 이어지며 성공적인 공항 수출 산업 모델을 구축했다.
산스 총괄 이사는 한국의 공항 거버넌스 통합 움직임에 대해 "공공기관 형태의 운영 방식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으며, 프랑스 파리(샤를 드골)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주요 공항들도 정부 지분과 민간 투자의 장점을 결합한 검증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여러 성공 케이스의 장점을 취합해 한국 상황에 맞는 성공적인 통합 모델을 만들어 내는 도전을 해보는 것"이라며 "공항 운영에 있어 민간 자본의 참여가 가져오는 경영의 엄격함과 투명성이 조직을 훨씬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