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부인가, 룸메이트인가[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2010년대 초반과 2020년대 초반, 약 10년의 간격을 두고 가사 재판을 담당하며 수많은 이혼 사건을 접했다. 그리고 현재는 변호사로서 다양한 이혼 사건을 수임하여 처리하고 있다. 1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가장 뚜렷하게 변화한 영역 중 하나가 바로 '부부의 성생활', 그중에서도 이른바 '리스(less) 문제'이다. 과거에는 부부 갈등의 한 단면에 불과했던 이 문제가 이제는 주된 이혼 사유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리스 부부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리스 부부'란 일정 기간 동안 성관계가 거의 없거나 극히 드문 부부를 의미한다. 흔히 1년에 10회 미만을 기준으로 삼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계적 참고일 뿐 법적 기준은 아니다. 실제 상담을 하다 보면 같은 '월 1회'라도 어떤 부부에게는 충분하고, 어떤 부부에게는 심각한 결핍으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상호 만족과 합의'이다.
최근에는 리스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남편이 관계를 원하고 아내가 거부하는 유형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아내가 관계를 요구하고 남편이 회피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서는 아내가 "남편이 몇 년째 관계를 회피하고 잠자리를 따로 하며 스킨십 자체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아내가 싫은 것은 아닌데, 너무 피곤하고 관계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는 단순한 성향 차이가 아니라 부부관계 단절의 중요한 징표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남편이 게임과 개인 취미에만 몰두하면서 부부 사이의 친밀감 자체가 사라졌고, 결국 아내가 외도를 저지르게 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외도 자체를 유책으로 보면서도 장기간의 관계 단절 역시 혼인 파탄의 주된 원인으로 함께 고려했다.
리스가 문제되는 경우
리스 자체가 곧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서로 동의하고 불편함이 없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실제로 정서적 유대나 공동의 일상적인 삶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부부들도 많다. 문제는 한쪽이 관계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경우다.
민법 제826조는 부부의 '동거 및 협조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여기에는 성적 교섭 의무도 포함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특별한 사유 없이 장기간 성관계를 거부한다면 민법 제840조 제6호, 즉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한 이유'의 유무다. 출산 직후의 회복 기간, 질병이나 성교통, 우울증과 트라우마,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사망 정신적 충격 등이 있는 경우에는 성관계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문제는 경계에 있는 사례들이다. 예를 들어 실제 사건에서 아내는 "관계 시 통증이 점점 심해져 결국 성관계를 회피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남편은 "치료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경우 등이다. 이처럼 신체적·심리적 요소가 뒤섞인 경우에는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최근에는 '정서 단절형 리스'도 증가하고 있다. 겉으로는 갈등이 없어 보이지만, 대화 단절, 스킨십 부재, 각방 생활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성관계가 사라지는 유형이다. 이런 경우 당사자조차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거리감이 형성된다.
리스를 유책사유로 입증하는 방법
리스 문제의 가장 큰 난점은 입증이다. 성생활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실무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원고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피고는 "그런 요구 자체가 없었고, 언제나 가능했다"라고 반박한다. 이 경우 법원은 주장만으로 정당한 이유 없는 성관계 거부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고 결국 입증책임을 지는 쪽이 불리해진다. 따라서 사전에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본인이 참여한 대화 녹음,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등 성관계 요구와 거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기록, 성기능 장애, 통증 등 관련된 상담 기록이나 병원 진료 기록 등이 필요하다. 반면 일기장의 기록, 혼자 작성한 메모나 캘린더 표시 등은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력이 크게 떨어진다. 최근에는 부부 상담 기록이나 정신과 진단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단순히 "거부했다"는 사실보다 "왜 거부했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선택
많은 이혼 사건에서 표면적인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성생활 불만족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완벽하게 맞는 부부는 거의 없다. 성격도, 생활 방식도, 성적 취향도 대부분은 맞춰 가는 과정 속에서 적절한 관계가 형성된다. 다만 그 '맞춤의 과정'이 서로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일방의 희생이 지속되고, 그로 인해 결핍과 좌절이 누적된다면 이러한 관계는 더 이상 건강한 관계로 보기 어려워진다.
최근 사건들을 보면, 성적 결핍이 장기화되면서 별거나 외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명백한 유책 사유로 보이지만 사실 오랜 시간에 걸쳐 관계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수준이 어디까지인가?" 그 범위 안이라면 노력과 조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섰다면 이혼 역시 현실적인 선택지로 검토될 수 있다.
부부관계는 사랑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해, 조율, 그리고 때로는 냉정한 판단이 함께 필요하다. 그리고 리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숨겨진 이야기가 아니라 혼인의 지속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